영화 리뷰 소개

로켓맨 영화소개

뤼케 2021. 2. 1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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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팝 록 음악가 엘튼 존의 음악 인생을 다룬 전기 영화.

 

〈로켓맨〉은 20년 동안 제작이 오랫동안 이어지던 프로젝트였다. 엘튼 존의 2002년 싱글 This Train Don't Stop There Anymore의 뮤직비디오를 바탕으로 장편 영화로 발전, 해당 뮤직비디오에서 전성기 시절 엘튼 존 역을 맡은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그대로 엘튼 존 역을, 디즈니 배급으로 제작하려 했으나 뮤직비디오 감독을 맡은 사진가 데이비드 라샤펠이 감독 직을 거절하면서 무산되었다.[] 이후 10년간 영화에 대한 후속 소식은 없었다.

2012년 1월 영화 제작 소식이 발표되었고,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그대로 엘튼 존 역으로 섭외되면서 시나리오 작업도 시작한다고 발표되었다.[5] 또 한동안 소식이 들리지 않다가 2013년 3월 호주 출신 감독 마이클 크레이시가 합류하면서 엘튼 존 역으로 톰 하디로 교체되면서 2014년 가을에 촬영을 앞두고 있었으나, 당시 배급을 맡기로 했던 포커스 픽처스와 예산 문제, 견해 차이 등으로 인해 계획대로 영화 제작이 쉽게 진행되지 못해 또 몇 년간 오리무중에 빠진 상태였다.

톰 하디는 영화에 출연할 것으로 2013년에 계약했으나 4년 뒤 2017년 7월, 자신의 노래 실력 때문에 하차했다. 대신 태런 에저튼이 출연 물망에 올랐다고 전해지면서 엘튼 존 역을 맡게 되었다.[] 엘튼 존은 자신이 카메오로 등장한 킹스맨: 골든 서클을 촬영하던 도중, 매튜 본과 이야기하면서 태런 에저튼 출연을 언급했다고 한다.[] 그렇게 영화 제작은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까지 정상적이게 진행되었다. 감독 덱스터 플레처도 매튜 본에 의해 발탁되었다.

매튜 본은 한 때 같이 20세기 폭스에서 일했던 짐 지아노풀로스 파라마운트 픽처스 CEO에게 태런 에저튼이 부른 2곡을 들어주고 반응이 좋자 이에 파라마운트 제작, 배급을 주었다.[] 태런 에저튼은 2016년 개봉된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 애니메이션 씽에서 엘튼 존의 1983년 히트곡 "I'm Still Standing"을 커버한 적 있는데 이 커버곡 반응이 상당히 좋았기 때문에 엘튼 존 역에 어울릴 것이라는 반응을 받았다.

사운드트랙은 2017년 하반기부터 2019년까지 녹음 작업이 진행되었고, 영화는 2018년 8월부터 10월까지 본 촬영을 가졌다.

 

줄거리

천재적인 음악성과 독보적인 노래로 세상을 뒤흔들며 대중을 사로잡은 ‘엘튼 존’(태런 에저튼). 연이은 히트곡 발매와 환상적인 무대 퍼포먼스, 화려한 패션으로 가장 빛나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인생 최고의 순간,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주지 못한 부모에 대한 상처와 사랑했던 친구의 배신에 무대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데…

 

등장인물

태런 에저튼 - 엘튼 존 역
매슈 일리슬리 - 레지널드 드와이트(어린 엘튼 존) 역
킷 코너 - 레지널드 드와이트(십대 엘튼 존) 역
제이미 벨 - 버니 토핀 역
제이미 벨도 태런 에저튼 못지않게 엘튼 존과 오랜 인연이 있다. 제이미 벨은 2000년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 역을 맡았는데, 이 영화를 바탕한 2005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음악을 엘튼 존이 작곡했다. 또한, 해당 뮤지컬에서 각본 및 작사를 맡은 리 홀은 로켓맨 영화의 각본가이다.
리처드 매든 - 존 리드 역
존 리드는 엘튼 존의 전직 매니저로, 1970년부터 1998년까지 그와 28년을 함께 일했다. 존 리드는 엘튼 존과 친했던 록 밴드 퀸의 매니지먼트도 1975년부터 1978년까지 3년간 맡았는데, 퀸 전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도 해당 인물이 등장한다.[10]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 실라 에일린 페어브라더 역
엘튼 존의 친어머니. 저 '페어브라더'는 재혼하고 받은 성으로, 원래 성은 해리스, 엘튼의 아버지 스탠리와의 결혼 후에는 드와이트였다.
스티븐 매칸토시 - 스탠리 드와이트 역
엘튼 존의 친아버지.
톰 베넷 - 프레드 페어브라더 역
엘튼 존의 의붓아버지.
제마 존스 - 아이비 해리스 역
엘튼 존의 외할머니이자 실라 페어브라더의 어머니.
에반 월시 - 엘튼 딘 역
엘튼 존이 십대 시절 때 활동했던 블루스 밴드 '블루솔로지'(1962-68)에 소속했던 색소포니스트 멤버이자 영국의 재즈 뮤지션이다. 엘튼 존이 레지널드 케네스 드와이트 이름을 버리고 '엘튼 존'이라는 예명을 정했을 때 이 인물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다. 반면 '존'은 블루솔로지와 함께 순회공연을 돌던 영국의 블루스 가수 롱 존 볼드리의 '존'에서 가져온 것인데 영화에서 존 볼드리는 언급조차 없다.
제이슨 페니쿡 - 윌슨 역
엘튼 존이 블루솔로지에서 키보디스트로 활동하고 있을 때 그에게 조언해주는 흑인 R&B 가수이다. 실존 인물은 아니며, 블루솔로지가 미국 R&B/블루스 가수들 공연의 백 밴드로 함께했던 시절의 인물들을 대변하는 묘사한 가상 인물이다.
찰리 로 - 레이 월리엄스 역
영국의 리버티 음반사에서 일했던 A&R 매니저[11]이자,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을 송라이팅 파트너로 이어주고 DJM 음반사에 계약할 수 있게 큰 도움을 준 인물이다. 존 리드 이전에 엘튼 존의 매니지먼트를 잠시 맡기도 했다.
스티븐 그레이엄 - 딕 제임스 역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이 1967년부터 10년간 소속했던 영국의 음반사 '딕 제임스 뮤직'(Dick James Music, 줄여서 DJM)의 대표자이다. 딕 제임스는 비틀즈 출판사 노던 송스(Northern Songs)의 社 공동 대표자이기도 하다.
레이첼 멀둔 - 키키 디 역
엘튼 존의 로켓 레코드 컴퍼니에 소속했던 영국의 가수이다. 엘튼 존과 함께 협업을 자주 가졌는데, 서로 듀엣으로 1976년 히트곡 Don't Go Breaking My Heart를 부른 걸로 유명하다.
테이트 도너번 - 더그 웨스턴 역
엘튼 존 밴드가 첫 미국 공연을 진행한 웨스트 할리우드의 트루버도어 클럽(Troubadour Club)의 주인이다.
쎌린데 슈마크 - 레나테 블라우엘 역
독일 출신의 음향 기술자이자 엘튼 존의 전 배우자. 엘튼 존과 1984년 결혼하고 1988년 이혼했다.

 

평가

It's going to be a long, long time before a rock biopic manages to capture the highs and lows of an artist's life like Rocketman.
다른 전기 영화들이 로켓맨처럼 예술가의 흥망성쇠를 잘 보여주기까지는 길고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로튼 토마토 총평
블루스를 부르기엔 너무 어렸던 소년이 그걸 이해하기까지
- 이용철 (씨네21) (★★★☆)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우위. 뮤지컬영화로서도, LGBT를 다루는 태도 면에서도
- 임수연 (씨네21) (★★★☆)

엠바고가 풀린 후 로튼토마토 신선도 100%로 시작하였으며, 이후 신선보증마크를 받는 등 높은 평가를 받았다.

동성애자 록 가수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 영화라는 점으로 보헤미안 랩소디와도 자주 비교되는 편이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우에는 퀸의 음악이 나오는 콘서트 장면들의 연출은 훌륭하였으나 프레디 머큐리의 고뇌와 갈등에 대한 묘사가 부족하여서 전기영화로써의 완성도가 부족하고, 심하면 퀸 뮤직비디오 극장판이라고 혹평을 받았던 반면에 로켓맨은 엘튼 존의 명곡들을 단순히 보여주기 식이 아닌 등장인물의 인간관계 및 심리상태를 묘사하는 장치로써 활용되었으며, 스토리 면에서도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엘튼 존의 외로운 심리묘사와 흥망성쇠를 묘사하는데 집중하였다. 때문에 작품의 드라마면에서는 로켓맨이 더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메타크리틱, 로튼토마토 등 전문가 평 역시 로켓맨이 압도적으로 높다.

드라마 부분 외에 실존인물들의 음악을 연출하는 장면 역시 보헤미안 랩소디와 큰 차이가 나는 편이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우에는 프레디 머큐리, 마크 마텔, 라미 말렉의 목소리를 합성한 음향효과와 콘서트 장면을 재현해낸 의상, 세트, 그리고 라미 말렉의 열연을 통해 퀸의 콘서트 당시 감동과 분위기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하는 방식으로 연출한 반면, 로켓맨의 경우에는 배우들이 엘튼 존의 노래를 직접 불렀으며, 빠르고 화려한 카메라워크와 편집을 통해 뮤지컬 방식으로 연출하였다.

하지만 한국 한정 엘튼 존의 음악이 퀸의 음악에 비해 대중적으로 덜 알려진 편인데다가[] 보헤미안 랩소디에 비하면 영화의 수위가 높은 편이고,[] 영화 자체가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음악에 집중하기보다는 엘튼 존의 일대기와 심리를 묘사하는데 집중하다 보니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상업적인 면, 대중적인 인기나 인지도는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떨어지는 편이다.

 

실제와의 차이

〈로켓맨〉은 엘튼 존의 인생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뮤지컬 식의 판타지 전기 영화라서 엘튼 존의 활동 경력이나 인생 전반의 세세한 내용을 완벽히 재현하지 않았고, 모든 히트곡들이 연도별로 삽입되지 않았고, 가상인물도 다수 있으며, 다큐멘터리 식의 전기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각색된 부분이 굉장히 많다.
영국 공군 중대장이던 엘튼 존의 아버지 스탠리 드와이트와 어머니 실라 드와이트는 실제로 사이가 좋은 부부는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음악적 소양이 있었지만 아들 교육 문제에서 충돌이 잦았다.[] 그러나 실제로 스탠리 드와이트는 영화처럼 아들을 매정하게 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탠리 드와이트는 아들의 밴드(블루솔로지) 활동을 위해 전자 피아노를 사주거나, 아들이 성공적인 가수로 성장했을 때 크게 자랑스러워했다고 하던 자상한 아버지이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오랜 세월 동안 아들을 지지해 준 주변 인물들 중 하나로 알려져 있지만 영화에서는 아들을 챙겨주면서도 다소 무심하게 대하는 모습이 심심찮게 묘사되었다. 2019년 출간된 엘튼 존의 자서전 〈Me〉에 의하면, 어머니는 틈날 때마다 히스테리 기질이 심해 충돌이 잦은 편이었고 서로 대화를 오랫동안 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엘튼 존의 친부모는 십대 시절 자아상이 불안정했음을 말해주는 예시로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외할머니 아이비 해리스는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어머니, 이모 '윈 해리스'와 함께 엘튼 존의 음악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항상 지지해 준 인물이었다.[] 그러나 엘튼 존의 이모는 영화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실라 페어브라더와 재혼한 남편 프레드 페어브라더[]가 엘튼 존에게 엘비스 프레슬리의 1956년 정규 1집 Elvis Presley를 선물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앨범이 발매되었을 당시 엘튼 존의 부모는 이혼하기 전이었고,프레드 페어브라더와 인연이 생기기 몇 년 전이었다. 또한, 엘튼 존이 엘비스 프레슬리 같이 50년대 로큰롤 음악에 빠진 건 부모가 이혼하기 전부터였다. 이 장면에서 실라 페어브라더는 엘튼 존에게 엘비스 프레슬리 풍 머리는 언제든지 해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엘튼 존에 의하면, 자신은 어렸을 때 그런 건 허락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레이 윌리엄스가 리버티 음반사에서 A&R 매니저로 일했을 때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 잡지에 '신인 작곡가 및 작사가'를 구한다는 구인 광고를 실었고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이 이 광고를 보자 연락하여 서로 송라이팅 파트너로 잇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레이 윌리엄스가 리버티 음반사가 아니라 DJM(딕 제임스 음반사)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등장했고,[] 엘튼 존이 보고 있던 구인 광고에 그려진 음반사 로고도 리버티가 아니라 DJM으로 묘사되었지만, DJM 음반사의 로고는 실제로 다르게 생겼다.[
레이 윌리엄스와 첫 만남에서 엘튼 존은 자신이 작곡한 곡을 연주하는 장면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엘튼 존은 해당 구인 광고를 접하고 나서 리버티 음반사에서 오디션 보러 갔을 때 짐 리브스 곡들을 불렀다.[] 리버티 음반사는 엘튼 존을 오디션에서 탈락시켰지만 DJM과 사무적인 관계를 가진 레이 윌리엄스의 도움 덕분에 DJM과 인연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은 1967년 11월 DJM과 계약했다.[24]
레이 윌리엄스 첫 만남 장면에서 레이 윌리엄스가 이름을 묻자, 아직 예명을 생각하지 않던 레지널드 드와이트는 블루솔로지 멤버 '엘튼' 딘의 이름과 사무실 벽에 걸려 있던 비틀즈 사진을 보며 즉석으로 "엘튼 존"이라고 짓는다. 그러나 사실과 전혀 다르다. 밴드의 멤버 '엘튼' 딘의 이름에서 가져온 건 맞지만 '존'은 존 레논의 '존'이 아니라 블루솔로지와 함께 영국에서 카바레 투어를 같이 했던 블루스 가수 '롱 존 볼드리'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다.[] 영화에서는 즉석으로 이름을 짓지만 실제로는 당사자들의 허락 하에 이 이름을 예명으로 사용한 것이며, DJM 측에서 '레지널드 드와이트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내기에는 히트성이 없다'라는 요청으로 예명을 만든 것이다.[] 이 예명으로 1972년 1월 7일 "엘튼 허큘리스 존"(Elton Hercules John)으로 법적 개명했으며, 중간 이름 허큘리스는 영국의 인기 시트콤 〈스텝토 앤 선〉의 등장 말(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영화에서는 중간 이름의 유래를 따로 묘사하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이 카페에서 처음 만나는 걸로 나오지만 실제로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이 만난 건 DJM 음반사의 레코딩 스튜디오이다.[] 앞서 엘튼 존은 레이 윌리엄스에게 받은 버니 토핀의 가사를 보며 Border Song을 작곡하지만, 이 곡은 1969년에 작곡된 곡이며 1967년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은 곡인데다 두 사람이 가장 처음으로 쓴 곡도 아니다.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이 작업한 가장 첫 번째 곡은 "Scarecrow"이다.[]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이 쓴 곡들이 딕 제임스에게 전부 거절되는 장면에서 딕 제임스는 더 많은 곡들을 만들어서 보여주라고 요청하고 이후 딕 제임스가 맘에 들어하는 곡들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나오지만, 사실과는 크게 다르다. 1967년 11월 DJM과 계약한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은 상업적인 팝 음악을 작업하라는 임무를 받으면서 첫 몇 개월 동안 음반사로 출퇴근하며 다른 가수들에게 줄 곡들을 쓰던 시기를 보냈다.[] 자칫 무명 작사/작곡가로 남겨질 뻔한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은 DJM 음반사에서 일했던 관계자들의 도움으로 부질없는 생활에서 벗어났고, 딕 제임스 역시 "남들을 위한 음악이 아닌, 자신들을 위한 음악을 만들고 싶다"라는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의 의도를 이해하고 안정적인 솔로 활동을 위해 지원해 주었으며, 1969년 정규 1집 Empty Sky 발매에 이르게 된다. 그 무렵, 엘튼 존은 생계를 위해 동료 뮤지션들의 음반에 백 보컬/키보드를 맡는 세션 뮤지션으로도 활발히 활동했지만, 영화에서는 이 부분까지 묘사되지 않았다.
영화에서 엘튼 존은 버니 토핀과 단 한 번도 다투지 않았다고 했고, 실제로도 버니 토핀과 불화나 큰 다툼 따윈 없었다고 인터뷰에서 수차례 밝혔지만 1975년 정규 9집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에 실린 엘튼 존이 1969년에 직접 작성한 일기들에 의하면, 1969년 1월 12일자 일기에 "버니와 다투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으며 실제로 작은 말다툼 정도는 몇 번 있지 않았겠냐라는 추측이 있다. 하지만 사소한 다툼이나 말싸움은 몇 번 정도 있었을지 언정, 서로의 관계에 금이 가거나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다툼은 가지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도 그런 식의 싸움으로 협업에 금이 갔던 적은 없었다. 영화 후반부 Goodbye Yellow Brick Road 장면부터 재활 치료 사이 동안 버니 토핀이 엘튼 존 옆을 잠시 떠나는 것도 극중 흐름을 위해 각색된 것이다. 실제로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이 쉬지 않고 달려온 활동으로 지친 탓에 1976년 11집 Blue Moves 발매 이후로 잠시 갈라선 적은 있었지만 개인적인 불화는 아니었고 1980년 14집 21 AT 33 작업 중인 1979년에 다시 재회했다. 해당 장면과 같은 상황은 실제로 없었다.[]
딕 제임스는 다소 구태의연했지만 인품이 좋은 신사라는 평가를 받은 반면, 영화에서는 입이 다소 험한 인물로 각색되었다. 이에 관해서 딕 제임스의 아들 스테판 제임스가 크게 비판한 바 있다.[]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이 아라벨라라는 여성의 아파트에 세입자로 들어가자 아라벨라는 엘튼 존에게 호감을 가졌고, 두 사람은 한동안 사귀다가 엘튼 존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털어놓고 아파트에서 쫓겨난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라벨라는 가상 인물로, 이 장면은 엘튼 존이 1968년에 몇 개월간 사귀었던 '린다 우드로'라는 여성과 교제하던 시기를 각색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Someone Saved My Life Tonight 문단 참고. 아파트에서 쫓겨나기 전에 엘튼 존이 부엌 가스 오븐에 들어가 자살을 시도하다가 버니 토핀이 말려 실패했고, 그 직후 아라벨라한테 예정된 결혼식은 모두 취소하겠다고 하는 장면이 있었지만 삭제되었다.[]
영화에서 엘튼 존은 버니 토핀과 만난 이후에도 런던 피너의 생가에서 지내는 걸로 나왔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엘튼 존은 부모 이혼 이후, 1962년에 어머니와 의붓아버지와 함께 런던 노스우드 힐스에 위치한 프롬 코트(Frome Court)라는 아파트로 이사 갔으며 1971년까지 그 집에서 9년간 지냈다.[37] Your Song을 포함하여 엘튼 존의 1970년대 초반 앨범들에 수록된 많은 곡들이 바로 이 집에서 탄생했다.
엘튼 존 팀이 웨스트 할리우드의 트루버도어 클럽에 방문했을 때 클럽 사장이던 더그 웨스턴은 닐 영이 지난주 공연했다고 언급하지만, 실제로 닐 영이 트루버도어 클럽에서 마지막으로 공연한 건 엘튼 존이 방문하기 1년 2개월 전인 1969년 6월이었다.[]
영화에서 더그 웨스턴이 엘튼 존 공연 무대 소개를 맡았지만 실제로는 닐 다이아몬드가 맡았다.[]
영화에서 엘튼 존과 존 리드는 트루버도어 클럽 공연 이후로 처음 만난 걸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로 두 사람은 트루버도어 클럽 공연 이전에 사업상 만나면서 인연이 생겼고, 존 리드가 1971년 3월부터 매니저를 맡게 되면서 1998년까지 함께했다.[] 존 리드가 매니저를 맡았던 첫 몇 년간은 엘튼 존과 연인 관계였다. 두 사람은 1976년 헤어졌지만, 영화와 달리 1998년까지 20년 이상을 엘튼 존 매니저로 지내면서 절친한 친구로 지냈다. 그랬다가 1998년 엘튼 존 측의 재정 위기를 존 리드에게 책임을 돌리면서 생긴 법적 분쟁으로 갈라서게 되었다.[] 실제로 엘튼 존은 존 리드 말고도 다양한 동성 연인들과 교제하며 여러 관계를 이어갔으나 영화에서 이 부분까지 묘사하는 대신, 서로 불같은 성격 때문에 다툼도 많았지만 그래도 아슬아슬한 절친으로 유지했던 옛 친구 존 리드를 일종의 헤어짐과 배신투성이던 굴곡적인 사랑 관계를 묘사한 장치로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매니저가 된 존 리드가 일방적으로 레이 윌리엄스와 딕 제임스를 내보낸 걸로 나오지만 이 역시 크게 각색된 것이다. 해당 장면은 엘튼 존이 한창 인기 스타였던 1970년대 중반을 묘사했지만, 실제로 레이 윌리엄스는 1971년 이후로 엘튼 존과 일을 하지 않았고,딕 제임스는 엘튼 존이 1976년 이후로 영국 레이블을 자신이 1973년 설립한 로켓 레코드 컴퍼니로 옮긴 이후로 결별했다.[] 존 리드가 개입하면서 저 둘을 내보냈다는 그런 일은 없었다.
트루버도어 클럽에서 레이 윌리엄스가 엘튼 존에게 밴드를 짧게 소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엘튼 존은 백업 밴드와 함께 순회공연을 트루버도어 클럽 공연 4개월 전인 1970년 4월부터 시작했고, 백업 밴드의 초기 멤버들 베이시스트 디 머리와 드러머 나이절 올슨과 1968년부터 알던 사이였다.[
영화에서는 음반 작업과 순회공연에 꾸준히 참여한 백업 밴드인 엘튼 존 밴드, 엘튼 존 특유의 음악적 사운드를 확립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프로듀서 거스 더전, 프로듀서 폴 벅마스터 등 인물들은 상세히 묘사되지 않았고 그저 1970년부터 1974년까지의 밴드 멤버들이 닮은 인물로 등장한 게 전부다. 트루버도어 클럽 공연 장면에는 기타리스트 멤버가 있지만 스코틀랜드 출신의 기타리스트 데이비 존스턴이 1972년 합류하기 전까지는 기타리스트가 없었다.[]
엘튼 존이 1970-80년대에 입었던 화려한 의상들과 유사하게 재현했지만 새로운 디자인의 의상들도 다수 등장했고, 엘튼 존의 헤어스타일이나 선글라스 등 시기에 따라 다소 다르게 묘사되었다. 예를 들면, 1970년 트루버도어 클럽에 처음 방문한 엘튼 존은 갈색 단발머리에 턱수염을 길렀지만 영화에서는 70년대 중반 모습에 더욱 가까운 연갈색 장발에 주황색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 키키 디와 같이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Don't Go Breaking My Heart를 부르는 장면에서도 엘튼 존은 장발로 등장했는데, 실제로 당시 탈모로 인하여 굉장히 짧은 머리였다.[
엘튼 존이 Rocket Man을 부르며 1975년 다저 스타디움 공연으로 넘어가는 장면에 백 밴드 멤버들의 모습이 상세히 등장하는데 1974년 밴드 라인업[]을 묘사한 것과 달리, 실제로 1975년 다저 스타디움 공연에는 밴드 라인업이 달랐고,[50] 영화처럼 빨간 의상을 입지도 않았다.[]
공연 무대에서 연주하는 피아노는 야마하 그랜드로 등장했지만 1970-80년대 당시 엘튼 존은 무대에서 스타인웨이앤드선스 피아노를 사용했고,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롤랜드 RD-1000 디지털 피아노를 사용했다. 야마하 그랜드는 1993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영화에 삽입된 대부분의 곡들은 실제 발매 시기와 상관없이 극중 흐름에 맞춰 새롭게 재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엘튼 존 가족이 함께 부른 I Want Love는 2001년 발매된 곡이라서 당연히 1950년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곡이다.
술집 피아니스트로 일하던 장면에서 부른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은 1973년 발매된 곡인데 엘튼 존이 술집 피아니스트로 일했던 시기는 1960년대 초반이다.
레이 윌리엄스와 처음 만난 장면에서 엘튼 존이 피아노로 연주한 곡 Candle In The Wind는 1973년 작곡되고 그해 발매된 곡인데 레이 윌리엄스와 처음 만난 시기는 1967년 6월이다.
엘튼 존이 버니 토핀의 가사를 보며 곡을 작곡하는 장면에서 "Border Song" 말고도 Daniel의 가사도 잠깐 등장한다. 이 곡은 1972년 작곡되고 1973년 발매된 곡이라서 1960년대에는 존재한 곡이 아니었다. 이 장면에서 "Border Song", "Daniel" 말고도 다른 세 곡의 가사도 보이는데 하나는 1969년 곡 Skyline Pigeon이고, 나머지 두 곡은 1967년 작곡된 "A Dandelion Dies In The Wind"와 "Tartan Coloured Lady"이다.[54] "A Dandelion Dies In The Wind"를 제외한 나머지 두 곡은 1968년 작곡되었다. 이후 버니 토핀이 가사 쓰는 장면에서 Honky Cat의 가사도 살짝 나오는데 1972년 발매된 곡이라서 이 곡도 당시 존재한 곡은 아니었다.
딕 제임스와 만난 장면에서 엘튼 존이 잠깐 부른 곡들 "Daniel",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 "Sad Songs (Say So Much)"는 각각 1973년, 1983년, 1984년 발매된 곡들이다.
1970년 8월 25일 미국 웨스트 할리우드의 트루버도어 클럽에서 부른 첫 번째 곡이 Crocodile Rock인데 실제로 트루버도어 클럽 공연에서 부른 첫 번째 곡은 Your Song이며, "Crocodile Rock"은 1972년 작곡되고 발매된 곡이라서 미국 진출 공연 당시 존재하지 않았다.
엘튼 존이 음향 기술자이자 전 배우자 레나테 블라우엘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디스코 곡 "Victim Of Love"[]이 레코딩 스튜디오에 잠깐 나온다. "Victim Of Love"은 1979년 발매된 곡이지만 엘튼 존과 레나테 블라우엘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1982년이다. 레나테 블라우엘은 이 곡이 수록된 1979년 정규 13집 Victim Of Love에서 음향 기술을 맡지 않았으며, 레나테 블라우엘이 엘튼 존 앨범에서 음향 기술을 맡았던 건 1984년 정규 18집 Breaking Hearts가 유일하다.[]
영화에서 "I'm Still Standing"은 엘튼 존이 재활 치료를 받고 있을 때 작곡하는 걸로 각색되었다. 이 곡은 1982년 작곡, 녹음되고 1983년 발매되었다.
영화와 달리, 엘튼 존은 실제로 심장마비를 겪지 않았다. 1978년과 1999년에 비슷한 증세를 겪은 적 있었지만 1978년에는 탈진으로 인한 일시적인 가슴 통증이었고, 1999년에는 심장 맥박이 불규칙해서 심박 조율기를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다.[] 영화처럼 존 리드가 공연 일정을 강행하는 일은 없었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을 펑크 내고, 주황색 악마 의상을 입은 채 택시에 타고 재활 치료실로 가는 장면 같은 일은 없었다. 엘튼 존이 1990년에 6주간 재활 치료를 받은 건 사실이지만 재활 때문에 실제로는 공연을 펑크 내는 일은 없었고, 재활 치료실이 뉴욕에 위치해 있다는 묘사와 달리, 엘튼 존이 재활 치료를 받았던 곳은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루터 병원이다.[] 무대 의상을 입은 채 치료실로 가는 일도 없었다.
엘튼 존이 재활 치료를 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90년 라이언 화이트의 사망이었다. 1986년부터 4년간 라이언 화이트를 꾸준히 지지해 준 친구들 중 하나로 함께한 엘튼 존은 에이즈로 인한 시한부 인생에도 용감한 모습을 보인 라이언 화이트에 감동했고, 라이언 화이트 사후에 알코올과 약물에 찌들었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한 삶을 살았는지 깨달았다.[] 영화에서는 심장마비로 인해 치료를 받던 엘튼 존이 병실 텔레비전에서 라이언 화이트를 알게 되는 장면으로 묘사되었지만 삭제되었고, 에이즈 검사를 받는 장면도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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