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소개

버닝 영화소개

뤼케 2020. 10. 5.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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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칸 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벌칸상 수상작

2018년 5월 17일에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로, <시> 이후 8년 만의 복귀작이다.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 온 세 젊은이 종수, 벤, 해미의 만남과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2018년 4월 4일 CGV 페이스북을 통해 티져예고편을 공개했고, 4월 23일 개봉 일자를 확정하면서 메인포스터와 메인예고편을 공개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을 영화화하는 국제적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다. 하루키의 단편소설 중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하지만, 소설의 모티프만 가져왔을 뿐 등장인물의 직업과 성격, 스토리에 변화를 줬다. 기본적으로 미스터리라는 뼈대는 같지만, 후술된 것처럼 영화는 그것만의 키워드들로 전개해 나가기 때문에 두 작품 사이의 간극이 꽤 있다. 윌리엄 포크너의 1939년작 <헛간방화(Barn Burning)>도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를 "하루키의 세계에 살고 있는 젊은 포크너의 이야기"라 말한 적 있다.

이창동은 <버닝>이 시나리오 개발 단계에 있을 때 부산국제영화제 좌담회에서 자신의 차기작에 대해 "젊은이들이 요즘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나 자기 삶에 대한 생각이 아마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개봉 전후에는 키워드를 '청춘'과 '미스터리'로 놓고 영화를 소개하고 있으며, 해외 및 한국 언론들도 이 테마에 집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근원이 명확하지 않은 '분노'가 이 영화의 중심 키워드로 많이 얘기된다. 시나리오를 쓴 오정미 작가가 이 영화의 초고 제목을 '분노 프로젝트'라고 써놓았을 정도였고 이창동도 영화의 가장 출발은 현대인의 분노라고 얘기한다.

영화 속에는 이밖에도 존재와 부존재, 계급 갈등, 고립된 개체, 불확실과 오해, 허무, 이상과 현실 등의 테마가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영화를 이 키워드들에 한정시켜 바라볼 필요는 없다.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를 봐도, 최대한 설명을 배제하며 다양한 해석이 나오도록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즉, 관객의 몫이 큰 영화.

제71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5월 16일 오후 6시 30분 뤼미에르 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했다. 영화제 기간 동안 비평가들 사이에서 최고 평점을 얻어 화제를 모았으나 본상에서는 무관이었고,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상을 수상했다. 이창동은 수상 소감으로 "영화 버닝은 현실과 비현실, 있는 것과 없는 것,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탐색하는 미스터리였다. 여러분이 그 미스터리를 함께 가슴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신점희 미술감독은 뛰어난 기술적 성취를 보여준 아티스트에게 수여하는 벌칸상을 수상했다.[8]

이후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상영되었다. 아시아 국가들을 비롯 북미와 유럽, 남미 등 문화/지역적으로 고르게 호평받아 최고의 영화를 뽑는 각종 목록에 단골로 올랐다. 대부분 소규모로 개봉됐으나 비평가들과 아트하우스 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해외에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영화로 알려졌고, 북미권에서는 한국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1차 후보(숏리스트)에 오르는 등의 성과를 얻었다.

 

시놉시스

"이제 진실을 얘기해봐"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 분)는 배달을 갔다가 어릴 적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해미(전종서 분)를 만나고, 그녀가 아프리카 여행을 가 있는 동안 자기 집에 들러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를 돌봐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는 아프리카에서 만난 벤(스티븐 연 분)이라는 정체불명의 남자를 종수에게 소개한다.

어느 날 벤은 해미와 함께 종수의 집으로 찾아와 자신의 비밀스러운 취미에 대해 고백한다. 그때부터 종수는 무서운 예감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등장인물

이종수 - 유아인 분
벤 - 스티븐 연 분[9]
신해미 - 전종서 분
연주 - 김수경 분
이용석 - 최승호 분[10]
변호사 - 문성근 분

 

프리 프로덕션

NHK에서 이창동에게 하루키의 단편을 영화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이창동이 제작을 맡고 연출은 젊은 감독이 하는 걸 생각했으나, 여러 사정상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러다 오정미 작가가 <헛간을 태우다>의 영화화를 제안함과 동시에 이창동이 직접 연출하는 것을 권유했다. 대중들에게는 2016년 이창동의 복귀작으로 처음 알려졌으나 제작사는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당시만 해도 NHK와 하루키 간에 판권 문제가 있었기 때문.

공동 각본을 쓴 오정미 각본가는 6월 14일에 열린 라이브톡에서, 텅 비어있지만 채울 수 없는 비닐하우스와 세련된 승용차를 불태우는 벌거벗은 몸이라는 두 가지 이미지는 영화의 가장 시작부터 있었다고 말했다. 소설 <헛간을 태우다>와 영화를 어떻게 연계했냐는 질문에, 소설의 등장인물이 말한 "아무 쓸모없는 헛간"이라는 표현에 화가 났고, 소설의 줄거리를 '진실은 있으나 아무도 모른다(다가갈 수 없다)'로 생각했는데, 그 진실에 다가가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화가날 것이라 생각해 영화를 풀어나갔다고 한다.

이창동 문서에서 읽을 수 있듯, 이창동은 무엇보다 캐스팅을 잘 하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고 본인도 스스로 인정하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개 오디션을 통해 '해미' 역으로 선발된 신예 배우 전종서에게 주목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전종서는 소속사와 계약한 지 3일도 채 안 되었을 때 오디션을 봤고, 결국 첫 오디션에서 영화 데뷔를 치른 주인공이 되었다. 데뷔작으로 전 세계에 얼굴을 알린 전종서는 이후 이 영화를 본 애나 릴리 아미푸르 감독을 통해 할리우드까지 진출하는 기회를 얻었다.

주인공 '종수'의 경우에는 영화 내내 표현을 잘 하지 않는 내성적인 인물이다. 이창동은 유아인이 전작들에서 강렬하게 표현하는 역할들을 맡았기 때문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종수'의 캐릭터에 역설적으로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창동은 곧 유아인이 운영하는 아트 갤러리에 직접 찾아가 캐스팅 의사를 전했고, 유아인은 당시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이창동의 이름 하나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스티븐 연의 캐스팅은 가장 늦게 결정됐으며 영화가 크랭크인한 후에 스티븐 연이 촬영에 합류했다. 오정미 작가는 드라마 <워킹 데드>를 보고 그를 추천했고, 이창동은 스티븐 연이 '벤' 역할에 잘 맞을 것이란 직감이 있어서 캐스팅했다. 스티븐 연에 따르면, 안 그래도 한국에 올 예정이었는데 마침 봉준호 감독이 전화해서 '이창동 감독님이 너를 찾는다'라고 알려줬다고 한다. '종수'의 아버지인 '용석' 역할에는 2018년 현재 MBC 사장인 최승호가 특별출연하였다. 촬영 당시에는 사장 부임 전이었고 감독과는 경북대학교 동문이라는 인연도 있는데, 이창동은 '왠지 종수 아버지 같아서' 캐스팅했다고 한다.

 

촬영 및 음악

2017년 제작이 가시화됐고, 9월 초 주인공들의 캐스팅을 확정한 후 9월 11일 크랭크인했다. 촬영은 <마더>, <곡성> 등으로 유명한 홍경표 촬영감독이 맡았다. 이창동 감독의 전작에서 함께 했던 신점희 미술감독, 이충연 의상팀장도 합류했다. 파주와 서울 등지에서 촬영한 후 다음해 1월 30일에 크랭크업했다.

영화의 주인공 종수와 해미의 공간은 자연광을 그대로 쓰고, 벤의 공간은 인공 조명을 써서 대비를 줬다. 홍경표 촬영감독에 따르면 파주를 배경으로 한 종수의 집은 새벽이나 해질녘에 주로 찍어야 했지만 의도적으로 빛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시간대별로 나눠서 찍었다. 안개를 배경으로 한 씬들은 너무 멋지게 나와 편집된 것들이 많다고 한다.

모그의 음악이 영화의 미스터리와 후반부 서스펜스를 증폭시키는 데 큰 몫을 한다는 호평이 많다. 이창동 감독의 전작들에서는 아예 음악이 없거나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것과 대비되는 점. 5월 29일에 열린 스페셜 GV에서 이창동 감독이 말하길, 음악 같지 않은 음악, 음악과 소음 사이에 있는 느낌이길 원했다고 한다. 당사자인 모그가 방구석1열에 출연했을 때 이 일화에 대해 자세히 말하길, 이창동은 이제까지 영화에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을 원했고, 모그가 구체적인 주문을 원하자 이창동은 "음악도 아니고 사운드도 아닌.." 이라 말했다고 한다. 한편, 노을 장면의 배경음악은 마일스 데이비스의 'Generique'이다.[11] 해당 곡은 영상 00:00~2:52 오프닝에선 씨스타의 'Touch My Body'가 흘러나온다.

영화의 오리지날 사운드 트랙은 여기에서 10곡을 들을 수 있다.

 

줄거리

저한텐 세상이 수수께끼 같아요[12]
여기에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돼.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지만 현재 택배 기사로 일하고 있는 ‘이종수’는, 소설을 쓰(려고 하)는 청년이다. 어느 날 그는 가게에 배달을 갔다가 경품 행사 진행을 하고 있는, 어릴 적 동네 친구 ‘신해미’를 우연히 만난다. 종수는 해미가 진행한 행사에서 손목시계에 당첨되었다가 해미와 서로를 알아보고[13] 서로의 근황을 물은 뒤 그날 밤 같이 술을 마신다. 해미는 종수에게 자신이 배운 팬터마임을[14] 선보인 뒤, 아프리카 부시맨족의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곤 아프리카 여행을 갈 계획을 말하며 ‘내가 아프리카로 여행을 갈 동안 고양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종수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다.[15]

다음 날, 종수는 해미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가지만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다. 해미는 "보일(고양이 이름)[16]이 자폐증이 있어 낯선 사람이 있으면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종수는 "그 고양이도 어젯밤 네가 상상했던 귤처럼 현실에 없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 이에 해미는 "내가 그럼 왜 너를 내 집에 들였을 거 같냐"고 반문하고,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그리고 둘은 입을 맞춘 후 성관계를 갖는다.

한편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종수의 아빠가 공무집행을 하러온 공무원을 공격해 상해를 입히는 바람에 경찰에 구속되자, 종수는 파주시에 있는 아빠의 빈집을 잠시 맡는다. 종수가 파주의 집에 들어간 첫날 밤부터 전화기로 계속 의문의 전화가 걸려오지만, 종수가 받으면 아무말 없이 끊기거나 받기도 전에 끊어지기 때문에 누가 전화를 하는지 알 수 없다. 해미가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난 뒤, 종수는 그녀의 부탁대로 해미의 고양이를 돌보기 위해 며칠마다 해미의 집에 간 다음 사료통에 사료와 물을 채워넣고는 텅 빈 방에서 남산타워를 바라보며 자위행위를 한다. [17]해미가 말했던 고양이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비워진 사료 그릇과 배설물의 존재가 고양이가 있음을 믿게 한다.

며칠이 지나고, 종수는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로부터 공항에 마중 나와달라는 전화를 받는다. 종수는 공항에서 해미, 그리고 해미가 아프리카에서 사귄 미스터리한 남자 ‘벤’을 만난다.[18] 종수의 낡은 트럭을 타고 셋은 같이 곱창집으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해미는 아프리카에서 느꼈던 쓸쓸함을 토로하며 서럽게 울고, 그곳에서 봤던 노을처럼 사라지고 싶었다고 말한다.[19] 만취한 해미를 벤이 데려다 주기로 하며 모임은 끝난다. 곱창집 밖으로 나오면서 종수의 낡은 트럭 뒤에 벤의 차 포르쉐[20]가 세워져 있자 종수는 살짝 위축된다. [21]

종수는 아빠의 재판을 방청하고 담당 변호사를 만난다. 변호사는 종수의 아빠가 자존심이 세서 숙이질 않는다며, 집행유예라도 받을 수 있도록 종수가 아빠를 잘 설득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종수는 아빠를 설득하지는 않고, 탄원서를 써서 동네 주민들에게 사인을 받으러 다닌다.[22] 그러던 중, 종수는 해미의 연락을 받고 카페에 가다가 또 다시 벤을 만나는데 여기서도 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모호한 말들을 한다. 그 후 셋은 벤이 요리하는 파스타를 먹으러 벤의 호화스러운 집으로 간다.[23] 벤의 집에 간 종수는 그의 고급스러운 라이프 스타일에 감탄하지만, 화장실에서 여성용 화장 세트와 다양한 여성용 장신구를 발견하고 위화감을 느낀다.[24]

시간이 지나고, 종수와 해미는 벤의 집 테라스에서 담배를 핀다. 종수는 "젊은 나이에 어떻게 하면 저렇게 살 수 있나"며 씁쓸하게 말하고, 벤을 '개츠비'에 비유하며 한국에는 개츠비가 너무 많다고 한다. 또한 "저 남자가 널 왜 만나는 거 같냐"고 해미에게 묻자, 해미는 "오빠가 나 같은 사람 좋아한대, 흥미있대" 라고 대답한다. 그날 저녁, 종수와 해미는 벤의 친구들과 고급 식당에 간다. 해미는 벤의 친구들과 아프리카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의 부족 춤을 선보이지만, 종수는 벤의 친구들이 해미를 구경거리 삼는 것 같아 불편해한다. 또한 벤은 해미의 여행이야기를 들으면서 하품을 한다.[25] 이후 그들은 벤의 친구들과 클럽에 가지만 해미만 클럽의 분위기에 취해 춤을 출 뿐, 그러한 공간이 불편한 종수는 이내 클럽에서 나와 혼자 돌아가고 만다.

며칠 뒤, 종수가 아빠 집에서 송아지를 관리하고 있을 무렵, 해미에게서 ‘벤과 너희 집으로 간다’는 연락을 받는다. 곧 해미와 벤이 종수의 집으로 도착한다. 세 사람은 종수 집 마당에 모여 벤이 사온 와인과 샌드위치를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 이때 해미는 "내가 어릴 적 우물에 빠졌는데, 종수가 구해주었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이 사실을 잊고 있는 종수에게 서운함을 표현한다. 분위기가 익어가자 셋은 대마를 하며 노을 지는 풍경을 본다. 약에 취한 해미는 상반신을 탈의한 다음 손으로 새 모양을 만들더니 뒤이어 아프리카 부족마냥 춤을 춘다.

그날 새벽, 해미가 자는 사이 종수는 대마에 취한 기운을 빌어 벤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분노조절장애이며 어릴 적 어머니의 옷을 태워야만 했던 개인사를 씁쓸하게 털어 놓는다.[26] 이런 얘기에 별로 관심없어 하던 벤은 종수에게 자신의 비밀스런 취미를 고백하는데, 낡고 오래되어 쓸모없어진 비닐하우스를 방화하는 취미이며, 불타는 모습을 보면 가슴 속에 베이스가 느껴진다는 말을 한다.[27] 또한 벤은 "내가 진짜 여기 온 이유는 사전 답사를 위해서였다"며, 곧 종수의 집 근처에 있는 비닐하우스를 방화할 계획이라고도 덧붙인다.[28] 종수는 벤의 고백에 불편함을 느끼며, "나는 해미를 사랑하고 있다"고 부르짖지만 벤은 그저 웃을 뿐이다. 그런 벤의 비웃는 듯한 반응에 울컥한 종수는 벤에게 욕설과 함께 다시 한번 "나는 해미를 사랑하고 있다"고 공격적인 태도로 쏘아붙인다. 마침 그때 잠에서 깬 해미가 나타나고, 벤과 해미는 떠나려 한다. 해미에 대한 애정과 벤에 대한 적대감(혹은 열등감)을 느끼는 종수는 ‘남자 앞에서 옷 벗고 춤추는 건 창녀나 하는 짓이다’라며 상처가 될 말을 내뱉어 버린다. 속이 상한 해미는 벤의 차를 타고 떠나는데, 그것이 종수가 본 해미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리고 그날 밤 종수는 꿈을 꾸는데, 비닐하우스가 활활 타고 있고 어린 모습의 종수가 상의를 벗은 채로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날부터 종수는 해미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29][30] 종수는 해미의 집에 가지만, 비밀번호가 바뀌어 있어 헛걸음을 했다 다시 방문한다. 재방문 땐 집주인에게 "고양이 밥 줘야 한다"는 핑계로 해미 집에 들어가려 하지만, 집주인은 "고양이는 없다"고 말한다. 실제 집주인과 들어온 집엔 고양이는커녕 사료도 배설물도 없다. 또한 평소와 달리 해미의 집이 깨끗이 정돈되어 있다는 것에 종수는 의아하게 생각한다. 집주인이 "여행이라도 간 것 아니냐."하고 묻지만, 종수가 문을 연 화장실 옆 창고에는 해미의 핑크색 수트케이스가 놓여있는 모습이 보여진다. 종수는 벤이 방화한 비닐하우스를 알아내기 위해 집 근처에 있는 비닐하우스들 근처를 새벽마다 돌지만 모두 멀쩡하다. 결국 종수는 트럭을 타고 벤의 차를 미행하기 시작한다. 벤이 카페에서 멈추자, 종수는 우연을 가장한 채 카페에 들어간 다음 벤에게 비닐하우스에 대해 묻는다.[31] 그가 ‘이미 태웠다‘고 하자, 종수는 "우리 집 주변에 탄 비닐하우스는 없었다"고 반박하지만, 벤은 '대상이 너무 가까이 있으면 모를 수도 있다'며 웃는다. 종수는 벤에게 해미의 행방을 묻지만 벤은 "해미는 사라졌어요. 연기처럼." 이라는 모호한 대답을 내뱉고는 새로운 여자친구 '연주'와 함께 카페를 떠나 버린다. 종수는 계속 실종된 해미를 찾고, 해미의 직업 동료로부터 "너무 많은 카드 빚을 지면 갑자기 도망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32] 그는 해미 엄마와 언니도 만나는데, 모녀는 해미가 종수에게 들려줬던 ‘우물 이야기’에 대해 거짓일(우물이 없었다) 것이라며 "해미가 거짓말을 잘한다"고 말한다. 또한 해미가 카드빚을 졌다는 정보 역시 알려준다.[33]

종수는 지속적으로 벤을 미행한다. 벤은 가족과 성당에 나가거나, 미술품들이 걸린 고급식당에서 식사하거나, 헬스클럽을 다니는 등[34] 종수와 너무나도 대비되는 여유로운 일상을 누린다. 종수는 그런 벤의 모습을 계속 지켜본다. 벤의 차를 미행하는 중, 갑자기 벤의 차는 속력을 내어 종수의 시야 너머로 사라지고 만다. 겨우 구석진 산속으로 들어가는 벤의 차를 따라잡은 종수는, 눈치를 챈 벤의 차에 의해 역추격을 당한다. 가까스로 벤의 차를 따돌리는 데에 성공한 뒤, 종수는 트럭에서 나와 몸을 웅크리고 언덕 위에 멈춘 벤의 차로 다가가지만, 벤은 차 반대편에서 저수지를 보며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다음 날, 잠에서 깬 종수는 또 다시 집에 걸려온 전화를 받는데, 어렸을 적 자기를 버리고 도망친 엄마의 전화다. 종수는 엄마와 카페에서 만난다. 엄마는 16년 만에 다시 만난 아들 종수에게 반가움보다는 "급전이 필요하다"는 뉘앙스를 은근히 내보이고[35], 종수는 한숨을 쉬며 그런 엄마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종수는 엄마에게 마을 우물에 대해 다시 한번 물어보는데, 해미의 엄마와 해미의 언니의 말과는 다르게, 종수의 엄마는 "마을에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한편 아빠의 재판은 재판장에게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 받으면서 종결난다. 벤에 대해 의심을 완벽히 버리지 못한 종수는 벤의 집 앞에서 계속 그를 감시한다. 그러다 종수는 벤에게 그 사실을 들키지만, 그는 웃으며 종수를 자신의 집에서 열리는 포틀럭 파티에 초대한다. 종수는 벤의 집 안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전에 왔을 때는 없었던 고양이를 발견한다.[36] 또한 전에 화장실에서 보았던 위화감을 준 서랍 안에, 자신이 해미에게 주었던 핑크색 손목시계와 같은 모델의 시계가 들어있는 것 역시 발견한다.[37] 그때 벤의 집에 연주가 방문하고 현관문을 연 사이 고양이가 탈출해버리는 사고가 발생하는데, 종수는 고양이를 찾은 끝에 주차장 구석에 숨은 고양이를 발견한다. 종수가 겁에 질린 고양이에게 해미가 불렀던 고양이의 이름(보일)을 부르자 다가온다. 거기다 벤이 새로 사귄 여자인 연주도 해미처럼 벤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자신의 여행 얘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종수는 기시감을 느끼고, 더욱이 벤이 이전처럼 지루한 듯 하품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불편함을 느낀 종수는 벤의 집을 빠져 나오지만, 주차장에서 만난 벤은 조금 더 어울리다 가라며 "종수 씨는 너무 진지하다. 베이스를 느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종수는 벤의 권유에 아무 대답없이 건물을 나선다.

종수는 비어있는 해미의 집에서 자위행위를 하지만, 지난 몇 번과는 다르게 남산타워를 보지는 않고 화면에 해미가 나타난다. 그리고 자위가 끝나자 해미는 사라지고 종수는 그녀의 집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38]

며칠 후, 종수는 벤에게 "해미를 찾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벤을 구석진 들판으로 유인한 종수는 그를 칼[39]로 몇 번이나 찌른다. 종수는 벤의 시체를 그의 포르쉐에 넣은 다음, 벤의 피가 묻은 자신의 옷가지를 벗어서 같이 넣는다. 이후 라이터[40]로 방화한다. 알몸이 된 종수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트럭을 타고 살인 현장을 유유히 빠져나오는 장면과 함께 영화는 완전히 끝이 난다.

 

다양한 해석

분노, 청춘, 미스터리 등이 주요 골자로 논의되는 영화지만 해석들은 저마다 갈린다. 특정한 메시지 대신 일종의 관점을 던지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는 해석의 여지가 많다. 결말을 어느 하나로 결론 짓는 것이 의미 없기도 하다. 수수께끼 같은 세상에서 주인공이 자신만의 답을 냈지만 그 답이 맞는 것인지조차 모호한 것처럼,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나름의 해석을 했을지라도 그 해석조차 확신을 할 수 없으며 종래엔 세상과 영화 자체가 미스터리임을 인식하게 한다. 관객들이 각자의 서사대로 영화를 보기 때문에 그로 인한 다양함이 다시 작품의 서사를 쌓아 나간다. 때문에 본작을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일부 평론가 및 관객들은 영화 속의 메타포를 해석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무의미하다고 보기도 한다.[42] 따라서 각 상징들을 해석하기보다 시각적 이미지 자체로만 보는 걸 권유하는 사람들도 많다.

 

인물과 전개에 대한 해석

영화의 내용은 종수의 소설인가
종수가 소설을 쓴다는 점, 특히 종수가 결행하기 전 텅 빈 해미의 방에서 소설을 쓰는 장면이 있기 때문에 이런 얘기가 나왔다. 또한 무슨 소설을 쓸 것이냐는 질문에 종수는 "저는 뭐를 써야 될지 모르겠어요. 세상은 수수께끼 같거든요."라고 대답한다. 종수를 연기한 유아인은 영화가 수수께끼를 던졌기 때문에 종수가 무엇을 썼는지 말하는 것도 관객들의 생각을 가둘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영화의 어느 시점부터 종수의 소설인지 의견이 갈린다.
일단 영화 전체를 종수의 소설이라 보기도 한다. 영화의 모든 것들이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고, 해미와 벤은 실재하는 인물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모호한 말들을 하기 때문이다.
영화 말미 살인 시퀀스부터 종수의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종수가 해미의 방에서 노트북으로 뭔가를 쓸 때부터 시점이 바뀌는 이유를 든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마치 액자식 구성처럼 창틀(프레임)안에 있는 종수를 보여주며 천천히 줌 아웃한다. 이후 벤이 화장실에서 렌즈를 끼고 연주와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영화 내내 종수의 시점으로 나온 이전 장면들과 이질감이 느껴진다. 또한 벤과 해미와의 관계에서 종수는 늘 행동하는 주체가 아닌 반응하는 객체로 있으며 따라서 유아인의 연기도 리액션 연기 일색이었는데, 해미의 방에서 뭔가를 쓰는 장면에서 촬영 방식이 바뀐 이후로 오직 액션만을 취하며 더 이상 리액션이 없다.
종수만의 소설 혹은 상상이 산길에서 벤을 추격하다 들켰을 때부터 시작했다는 견해도 있다. 종수는 벤에 의해 역추적당한 이후 트럭을 두고 언덕을 올라가 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화면에서 보이는 둘의 구도는 비현실적이라 꿈처럼 보이는데 마침 다음 장면에서 종수는 악몽을 꾼 것처럼 잠에서 깬다. 이때부터 종수에게 일어났던 혼란한 상황들이 정리되기 시작한다. 누군지 알 수 없었던 전화는 엄마[43]였고 엄마는 해미가 말한 우물이 있었다고 말한다. 아빠의 재판은 종결됐고 송아지를 팔았다. 벤의 집에 다시 들어가면서 그를 살인자로 거의 확신했고 보지 못했던 고양이를 찾았다. 이후 소설을 쓴다. 이것들은 모두 종수가 자기 마음대로 생각한 플롯일 가능성이 있다. 현실의 종수에게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일이지만 종수 내면에서는 바라던 것일 수도 있고, 종수에게 미스터리로 여겨져 혼란만 가중시킨 그것들을 본인 식대로 소설이나 상상으로 해결해 버렸기 때문이다. 종수는 이렇게 비현실을 현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영화가 종수의 소설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종수가 소설을 쓰는 행위 자체는 작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종수는 소설을 쓰고 싶지만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다. 후반부 해미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벤을 쫓아다니지만, 종수가 그만큼 해미를 사랑했는지도 불분명하다. 게다가 종수는 해미를 찾는 것인지, 비닐하우스를 찾는 것인지, 벤에게 집착하는 것인지, 심지어 안개 속에서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지 모호했다. 즉 소설을 쓰기 전까지 종수는 무언가를 하려고 하거나 혹은 하고는 있지만,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과 쫓는 것이 무엇인지 불분명한 상황에 있었다. 종수가 이런 상황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써야할 것을 찾았다는 의미이자 서서히 점화되고 있는 분노의 원인을 스스로 진단했다는 의미이다. 그 소설의 내용은 종수 내면의 목소리, 바라던 꿈, 희망 등 어떤 것으로든 해석 가능하다. 그래서 종수를 소극적인 인물로 보기도 하지만, 세상의 미스터리를 풀고 자신만의 정답을 찾고자 하는 진지한 인물로 바라보기도 한다.[44]
한편, 종수를 영화의 미스터리에 적극적으로 끌어오는 지점, 혹은 종수를 둘러싼 플롯상의 전환점들이 몇 가지 있다. 해미가 종수를 알아본 뒤 팬터마임을 보여주는 장면, 해미가 어릴 적 얘기를 하며 "이제 진실을 얘기해 봐"라고 말하는 장면, 벤과 해미가 요리를 할 때 벤이 메타포는 종수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장면[45], 벤의 고백을 들은 뒤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불타는 비닐하우스를 보는 꿈을 꾸는 장면, 벤에게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고 베이스를 느껴야 한다는 말을 듣는 장면 등등.
해미는 어디로 갔는가, 해미는 어떤 인물인가
해미는 종수를 만난 처음부터 팬터마임을 보여주면서 없는 것도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해미의 고양이와 진짜로 존재했는지 알 수 없는 우물도 마찬가지. 이를 두고 해미가 4차원인 캐릭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억눌린 현실에서도 영혼만은 자유롭고 초월적으로 살아감을 의미할 수도 있다. 분노조차 억압되어 있었던 종수와는 다른 유형의 인물. 특히 해미는 현실을 초월해 '그레이트 헝거'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 때문에 해미를 가족들의 말처럼 '말 잘 지어내는 애'라고 치부할 수는 없으며, 이 대사도 해미가 가족에게조차 이해 받지 못할 만큼 팍팍한 현실에서 살고 있다고 볼수도 있다. 해미는 실재한다 아니다의 상태가 중요하지 않은 초월적 삶을 갈망하고, 그레이트 헝거의 꿈을 쫓아 그동안 모은 돈으로 아프리카까지 여행을 간 인물이다. 찰나의 빛을 기다리는 상황에 벗어나 삶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며, 그녀가 팬터마임으로 만들어 낸 새 모양처럼 더 자유롭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해미를 힘든 현실 속에서도 각자의 원하는 것을 추구하려는 보통 청년에 가깝다고 보는 생각들이 있다. 해미는 카드빚을 지며 힘들게 살지만 돈을 모아 여행을 가고, 팬터마임을 공부하면서 누구도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는 삶의 의미를 구하려 한다. 배우 전종서는 모든 게 다 좋아지고 있어도 거기에 따라가기가 너무 벅차지만 현실에 순응하고 있기에는 너무 우울할 수밖에 없다면서, 해미의 삶과 현실을 결부시켰다.
종수는 해미가 사라진 이유를 두고 벤을 의심하기 때문에, 해미가 벤에 의해 살해 당했다는 관점이 첫 번째로 있다. 하지만 순전히 종수의 관점일뿐, 영화 속에서 보여준 몇 가지 단서들을 두고 해미의 행방을 확신하기는 어렵다. 결정적이라 생각되는 해미의 시계의 경우, 영화 속에서는 매우 흔한 물건으로 암시되고, 해미가 떠나기 전 벤에게 주고 갔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해미가 종수를 떠난 것에 불과한 것이라는 관점이 있다. 해미는 종수의 집에서 노을을 배경으로 마치 '그레이트 헝거'가 된 것처럼 춤을 추고 자유를 만끽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미는 아프리카 여행기를 말하면서 "노을처럼 사라지고 싶다"라는 말을 한 적도 있다. 벤의 대사를 보아 해미는 종수를 각별하게 여겼었고, (사실이라면) 어릴 적에는 우물에 갇혀 있을 때 종수를 통해 희망의 빛을 보았다. 하지만 끊임없이 그레이트 헝거를 추구한 해미는, 노을씬 이후로 자신에게 상처를 준 종수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됐다. 또 다르게는 해미가 자살했을 거라 보는 견해도 있고, 빚 때문에 다른 곳으로 떠났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해미는 '그레이트 헝거'를 꿈꾸며 아프리카 여행을 가는 것처럼 이상을 추구하는 인물인데, 이런 해미가 발 디딜 곳이 없어졌다는 것은 이상이 좌절됐다는 의미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미를 잠적하게 한 원인을 세상 그 자체라고 크게 볼 수도 있다. 슬퍼하며 우는 해미를 보며 신기해 할 뿐이고, 그레이트 헝거가 되고자 하는 노력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쳐다보며, 흥미있어할 뿐 이해하려 하지 않는 건 영화 속 벤이기도 하지만, 해미와 종수와 같은 이들을 둘러싼 잔인한 현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극중에서 해미의 서사를 기억해주고 진지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해미는 더욱 외로운 존재로 보인다. 종수는 해미를 제대로 기억 못 하지만 이해하(려)는 인물이었으나, 벤이라는 모호한 세상과 맞닥뜨린 후 해미를 떠나보냈다 볼 수도 있는데, 이것을 혼돈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할 수 없는 현실이라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벤은 진짜 살인자인가, 벤의 정체는?
영화가 주는 정보로는 벤이 살인범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벤을 연기한 스티븐 연도 이에 대해 관객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정답을 주지 않았다. 종수가 해미의 행방과 벤에게 집착하는 것을 보여주지만, 영화는 결국 벤이 살인을 했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벤에 대한 정보들은 확실한 것이 아니며 모호할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벤을 향한 분노를 쌓아왔던 종수의 왜곡된 시각이 만들어 낸 것일 수도 있다. 각팍한 현실에서 제대로 버닝하지 못한 무기력한 종수가 분노를 적립해오다가, 자신만의 시선에 확신을 갖고 또 다른 방식으로 버닝해버린 것이란 시각이다. 여기에는 또, 종수가 해미에 대한 죄책감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벤을 살인자로 확정해버렸다는 시각도 있다.
이런 전개에 대해서는 몇가지 얘기들이 있다. 유아인은, 대부분 판단하고 정의내리고 싶어하는 세상이지만 그렇게 해서 내놓아진 정답에 의구심을 품을 만한 시대를 비유한다고 말하면서, 때문에 명확한 메시지를 주는 것보다 세상에 대한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라 봤다. 이창동 감독은, 부유한 벤이 겉으로 보기엔 잘못이 없고 직접적으로 피해를 준 것 역시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벤의 삶과 태도가 자신도 모르게 종수와 해미 같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누군가의 삶이 의도치않게 또다른 누군가에 피해를 줄 수도 있지만 그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미스터리가 발생한다고 표현했다. 실제로 벤은 종수와 해미를 대접하고 배려하는 듯 보이지만 그들의 행동과 말을 그저 재미있는 것으로 삼거나 지루하게 여겨 종수를 불편하게 만든다. 이창동은 다른 인터뷰에서 일상의 작은 것들이 때로는 의심, 두려움, 막막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답이 분명하지 않고 삶이 나아지지 않는 세상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싸워야 할지 모르는 미스터리가 분노로 이어졌을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벤의 모습처럼, 세상은 겉보기에 세련되고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벤이 종수에게 남다른 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해석도 있다. 종수가 살고 있는 파주까지 찾아갈 만큼 애정이 있었고, 종수가 벤의 집에 찾아왔을 때 베이스를 느끼라고 했던 것은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이다. 종수가 자기 이야기 같다고 말한 윌리엄 포크너의 책을 재미있게 읽기도 했다. 종수에 의해 죽음을 맞을 때 마치 종수를 끌어안는 듯한 모습도 이런 관점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본다. 벤은 많은 것을 가졌지만 동시에 외로움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벤이 죽을 때까지도 해미와 종수를 자신에게 흥미있는 존재로만 여겼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종수가 벤을 어설프게 추격할 때 벤이 모르는 척 한 것도 자신을 찾아오고 따라오는 종수가 지루한 자신의 일상에서 그저 재미있게 느껴졌을 거란 의견이다.[46] 이 의견대로라면 벤이 죽기 전 집에서 파티를 즐길 때, 지루한 듯 보이다가 자신을 관찰하는 종수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장면에서 대비를 느낄 수도 있다.
또한 벤을 어느 캐릭터로 보지 않고 종수가 바라보는 세상의 의인화로 보기도 한다. 종수에게 벤은 수수께끼 같은 세상 그 자체이며 그를 쫓다 끝내 죽이는 건 혼란스러운 세상을 탐색하다 옳든 틀리든 자기의 결론을 내리고 새롭게 시작함을 의미한다는 것. 진실이 무엇이 됐든 그 실체를 아는 사람은 없는 세상이니 아무리 부조리가 만연한다 해도 종수는 뭐라도 선택을 해야했을 것이다. 시작은 해미의 행방과 비닐하우스 탐색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종수는 진실이 무엇인지 찾기 보다, 답을 이미 정해놓은 채로 단서를 탐색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결말을 새로운 시작으로 본다면 희망적이다.
고양이는 실재했는가? 벤의 고양이는 보일이 맞는가?
해미는 종수에게 팬터마임을 선보이고, 그것을 생각한 종수가 해미의 집에서 "고양이가 없다는 사실을 잊으면 되는 거지?"라고 묻는다. 그러자 해미는 오히려 웃으며 "내가 없는 고양이한테 밥 주라고 너를 우리 집에 불렀을까봐?"하고 말하며 자신은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 맞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집 주인은 이 원룸에선 고양이를 기르는 게 금지돼 있다고 말했으며, 여행을 간 보름 동안 고양이의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고양이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벤의 고양이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자폐증이 있어서 보름 동안이나 이름을 불러도 안 나오던 고양이가, 그때 이름을 부른 것으로 한 번 다가왔다고 그 고양이가 해미의 보일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아예 관점을 달리 해서 미숙한 예술가가 새롭게 태어나고 결국 진짜 예술가의 길을 찾게 되는 이야기로 보는 해석도 있다. 출처
영화는 미스터리의 체험을 의도한다?
영화가 종수의 시점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관객들은 자연스레 종수처럼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종수의 답인 벤의 살인은 증거가 희미하다. 영화에서 중요한 건 종수가 수수께끼 같은 세상 때문에 쓰지 못했던 소설을 쓴다는 점이다. 자신만의 해석과 답을 찾아내 불확실한 인과관계를 나름대로 명확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종수의 판단에 대한 옳고 그름은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
영화가 끝나고 종수처럼 미스터리에 빠진 관객들은 영화 안에 떨어진 퍼즐 조각들을 맞춰나가지만, 무언가 비어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 비어있는 조각을 찾아내기 위해 메타포와 상징을 파고 들고, 이러한 해석을 통해 영화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건지 파헤친다. 이것은 극중 종수가 비닐하우스를 탐색하고 벤을 미행하며 진실이 무엇인지 다가가려는 태도와 비슷하다. 그리고 관객들은 종수처럼 자신만의 해석본을 내놓는다. 종수가 고양이, 해미의 시계, 벤의 태도 등을 조합해서 결론을 냈듯이, 관객들도 영화 안의 퍼즐을 조립해 이 영화가 무엇인지 결론을 낸다. 하지만 종수의 그 판단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것처럼 관객들의 결론도 어느 것이 맞다라고 딱 잘라 얘기하기는 어렵다.
감독의 말처럼 사실은 있지만 그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미스터리가 나온다. 이런 불확실함은 영화를 넘어 현실 세계에 도처해 있다. 영화의 퍼즐을 맞춰나가듯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사상이든 철학이든 각자의 결론을 내고 종수처럼 소설이든 글이든 주장이든 각자의 해석과 판단을 표현한다.[47] 그러나 종수의 판단에 대해 확언할 수 없고, 관객들의 영화 해석본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현실 세계에 대한 각각의 판단, 믿음, 사상에 대한 시비는 있지만 어느 누구도 어떤 것이 가장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 모른다. 결국 관객들은 영화 속 종수처럼 미스터리를 체험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관객들의 '이게 뭐야' 라는 반응을 애초부터 원했을 수 있다.

 

각 상징적 요소들에 대한 해석

각 주인공들의 집
종수는 경기도 파주시 만우리, 해미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벤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에 산다. 종수의 집은 대남선전방송이 들릴 정도로 소란스러운 삶의 터전이다. 내부는 종수를 옭아매는 과거가 있지만, 외부는 자유로운 새들과 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으로 애매한 경계에 서 있어 혼란스러운 종수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해미의 방은 북향이라 대부분의 시간 동안 어두워서 운 좋게 남산타워에 반사되는 빛이 들어올 때만 햇볕을 쬘 수 있다. 벤의 터전은 종수와 해미의 집과 완벽하게 대치된다. 부의 상징임과 동시에 종수를 한없이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벤은 소란스럽고 초라한 종수의 집에서 그저 경치가 좋다며 무드를 잡고, 살려고 음식을 차려먹는 종수와 달리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48] 취미로 요리를 하며, 용산참사의 비극을 담은 예술품이 있는 곳에서 여유롭게 값비싼 식사를 하는 등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삶과 그 터전을 재미/흥미로만 바라본다. 불합리한 현실을 은유적으로 얘기한 것이자, 벤의 대사처럼 가진 자들은 있는 것을 '제물'처럼 즐긴다는 것의 메타포. 더불어 벤이 타고 다니는 포르쉐도 종수의 낡은 트럭과 달리 부의 상징일 수 있다.
남산타워의 빛
현실과는 다른 한줄기 희망이라고 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보면, 남산타워의 빛은 사실 빛이 아닌 허상일 수가 있다. 햇빛처럼 보이지만 진짜 햇빛이 아닌 것처럼. 희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허상에 지나지 않을 수 있고, 종수는 빛의 근원을 알지 못한 채 실제인지 허구인지 판단할 수 없는 그 빛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49]
용산참사 그림
벤이 가족들과 식사를 하는 장소에서 종수가 보던 그림은, 용산참사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정확히는 화가 임옥상의 <삼계화택-불>이다. 사회적 비극도 소비 대상으로 소모된다는 세태 비판이자, 벤 같은 유산계급은 사람이 불에 타 죽는 것을 유희로서 소비할 수 있다는 은유다.
고양이, 송아지, 새 떼
고양이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메타포. 이 고양이를 종수가 보일이라 부름으로써, 종수에게 해미의 고양이라는 사실이 관찰되고, 고양이가 존재한다는 현실이 확정된다. 또한, 고양이 이름의 원인이 된 보일러는 사람이 다루는 화기 중 가장 불이라는 것이 떠오르지 않는 물건이다.(실제 보일러 속 불을 본 사람은 거의 없듯이). 다르게는 'boil' 그대로 보아 '분노가 끓다'로 해석하기도 한다. 송아지는 종수에게 내재된 폭력성과 반대 방향에 있는 순수성으로 보기도 하고, 종수를 옭아매는 현실 그 자체로 보기도 한다. 파주집은 종수가 떠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송아지 밥을 주기 위해 이사를 한다. 떠나고 싶은 세상이지만 송아지 하나 때문에 떠날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하고, 그래서 종수가 송아지를 파는 건 행동 개시의 전초전이라는 것. 새 떼는 자유롭고자 하는 해미.
비닐하우스
해미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 하지만 벤의 살인을 확정지을 수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종수나 무형적인 것에 가깝다. 벤은 모호한 말을 늘어놓으며 재미만을 추구하기에 그의 말은 신뢰할 수 없다. 오히려 영화 내내 비닐하우스에 불을 지르는 건 종수이다. 흔해빠진 것,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존재로서 해미, 종수 모두 해당 된다. 결국 태워진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종수의 욕망이자 '베이스'이기 때문이다. 종수가 비닐하우스를 하나하나 조사해 나갈 때 투명해 보이지만 안에는 잘 보이지 않음을 확인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종수의 옆으로 또 다른 검은 종수의 그림자가 스치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비닐하우스는 영화의 주요 테마인 '모호함', '불분명함'을 형상화시킨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비닐하우스는 언뜻 투명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안을 들여다 보려고 하면 잘 보이지 않는다. 극중에서 종수가 찾아다니는 비닐하우스들은 모두 텅 비어있어서, 비닐하우스의 문을 열고 본다 해도 종수에게 미스터리를 풀 실마리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비닐하우스는 종수가 그토록 알아내고 싶어하지만 알 수 없고, 도처에 존재해 언제라도 꺼내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쉽게 찾아낼 수 없는 세상의 진실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를 비추어 볼 때, 종수가 비닐하우스와 진실에 대해 쓸모없는 것이라 여기고 무관심했다면 아무 일도 없었겠지만, 계속 실체를 찾아나가고 진실을 알려고 했기에 집착과 분노가 생겨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
리틀 헝거 & 그레이트 헝거
종수는 리틀 헝거, 해미는 그레이트 헝거가 되고 싶어하는 리틀 헝거이다. 반면에 벤은 그레이트 헝거로 치환 가능하다고 보는 해석도 있지만, 벤이 극중에서 뭐든지, 심지어 대남방송까지도 재미있다고 반응하는 것이나 '일하는 것과 노는 것의 경계가 없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그레이트 헝거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유희만을 추구하는 벤 보다는 매사에 진지한 종수나 한단계 높은 차원을 꿈꾸는 해미가 그레이트 헝거일 수 있다.
우물 이야기
해미가 종수에게 해주는 우물에 관한 이야기는 실제와 허구가 뒤섞이며 과연 무엇을 사실로 믿고 기억해야 하는지 어렵게 한다. 종수는 기억 못하는 우물에 관한 이야기를 애틋한 감정을 담아 전하는 해미 때문에 믿게 되었지만 이후 주변인들과의 대화에서 우물이 있지도 않았다는 말을 들으며 진실을 잃어버린다. 이후에는 다시 종수의 엄마가 우물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진짜인지 아닌지 더욱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 우물 이야기는 사람이 실제든 허구이든 진실을 받아들일 때 선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종수가 벤을 살인자로 믿는 것처럼.
우물 자체에 대해서는, 실재를 증언하는 유이한 인물인 해미와 엄마가 카드빚과 급전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일종의 허영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이 우물을 인물들의 처지에 대입하면 어두컴컴한 곳에 갇힌 상황, 그럼에도 남산타워의 빛처럼 한 줄기 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현실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는 종수는 우물의 존재를 믿으려 하고, 결국 자신이 듣고 싶어했던 얘기를 해주는 엄마의 말을 믿고[50] 비로소 미스터리에 대한 자신의 결론을 내놓는다. 덧붙여 해미가 우물 속에서 구출을 원하고 있음을 비유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창동의 인터뷰[51]를 참고해 본다면, 오히려 해미는 구원 자체가 비현실적이니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삶을 지탱해 왔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것은 (해석에 따라 실제, 소설, 상상 등으로 갈리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미스터리를 풀고 자신만의 서사를 확정한 종수의 선택과 맞닿는다. 이런 해석을 통해 우물뿐만 아니라 종수가 쓰는 소설도 허영으로 볼 수도 있으나, 이들이 이렇게 허구의 이야기를 펼쳐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52]을 생각한다면, 허영이 아니라 삶을 버티는 방법 중 하나는 아닌지 질문이 남게 된다.
종수의 꿈
이걸 종수의 꿈이 아니라 벤의 어릴 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53] 이런 꿈은 종수가 불 타는 것에 희열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시각뿐만 아니라, 종수가 벤을 동경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반면 이동진은 종수가 해미와 벤에게 들은 말이 꿈에 반영된 것이라 해석한다. 벤이 비닐하우스를 태운다고 말했기 때문에 불타는 장면이 나오고, 해미가 우물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물에 젖어 있는 어린 아이가 나온다는 것.
노을씬 전체
남북의 공간적 경계에 해당하는 파주에서, 경계에 걸쳐진 시간을 의미하는 노을, 현실을 환상처럼 보이게 하는 대마와 술 등이 함께 놓이면서 신비로움을 만들어 낸다. 일종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은유하는 이 씬에서 벤은 '자연의 도덕'과 '동시존재' 등 자신만의 논리를 늘어놓고 종수는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다. 경계의 시간 속에서 종수와 벤은 자기 고백을 하고 해미는 하늘을 나는 새떼 앞에서 홀로 삶의 의미를 구하는 춤을 춘다. 이창동 감독은 이를 두고 68운동에 빗대어 얘기했다. 자유롭고자 하는 해미 앞에 종수의 집에서는 태극기가 휘날린다. 태극기가 이데올로기화된 현재 거부할 수 없는 질서로 상징될 수 있다는 것. 대부분은 이 씬에서 벤이 비닐하우스를 그저 미끼 던지듯 메타포로 던졌고 종수가 억측한 것에 주목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현실에 지쳐있기 때문에 노을씬처럼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의 경계를 허락하지 않고, 종수처럼 미스터리를 하나씩 제거한 후 나름의 답으로 현실을 지탱할 수밖에 없었다는 관점.

분노의 상징인 칼은 영화 초반 종수가 파주집에서 찾아내는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칼은 종수의 아빠 것이다. 결국 종수가 이 칼을 쓰는 것은 부모 세대의 분노가 자녀 세대에게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의 연장선으로, 종수가 극중 초반에 칼을 찾아냈기 때문에 결국 종수에게 선택과 결말은 이미 정해져있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허름한 창고 안 금고 속에 감추어있다는 점에서 종수의 숨겨진 분노와 폭력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 또한 종수가 벤의 집 화장실에서 보았던 함 속의 미용 도구와 대응된다.

 

 

이데올로기적인 해석

국가와 개인
주인공의 아버지는 공무집행방해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 아버지는 산업의 일꾼이었고, 베트남전 참전 용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투기를 반대하고 시골에서 농사꾼으로 살아가던 애국자였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암소 한 마리 뿐이다. 반면 땅을 사고 건물을 샀던 이들은 일하지 않고도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간다. 젊은 나이 국가를 위해 희생했던 아버지의 분노는 결국 국가를 향했다. 하지만 국가는 더 이상 이 남자를 필요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소설가를 지망하는 종수(유아인 분)는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용직으로 살아가고, 해미(전종서 분)는 카드 빚에 쫓겨 나레이터 모델을 하며 작은 옥탑방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 세대가 국가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다면, 자녀 세대는 자본을 위해 삶을 바치고 있다. 종수가 일하는 곳은 아르바이트 지원자들을 숫자로 부른다. 종수가 빠져도 언제나 그 자리를 채울 젊은이들은 많다. 하나의 인격체가 단순히 숫자로 불리우는 이곳은 바로 자본주의의 세계이다. 그들은 낡진 않았지만 가난하고, 그래서 약하고, 그래서 대체 가능한 존재이다.
"한국에는 위대한 개츠비가 너무 많아."
"개츠비가 뭔데?"
"뭐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돈은 많은 미스테리한 인물."
반면, 벤(스티븐 연 분)은 해미가 아프리카에서 만난 의문의 남자이다. 그는 늘 여행을 다니고, 포르쉐를 몰며, '그냥 노는게 일'이라고 하는 돈 많은 젊은이다. 사려 깊고, 친절하며, 사교성 있고 매력적이며 새롭고 쓸모 있는 것들을 잔뜩 가졌다.
참을 수 없는 세계(판타스마고리아)란 어쩌면 새로움에 대한 강박적 추구에도 불구하고, ‘권태와 무위’ 속에서 ‘항구적인 일상적 진부함의 상태’를 살아가게 하는, 그런 세계가 아닐까. 이런 세계는 사유의 불가능성을 조장한다. 반복되는 삶의 패턴들 속에서 사유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조장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끔찍한 일이다.
-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P.167
새로움에 대한 강박적 추구란 소비자로서의 심리 상태를 말한다. 즉 자본주의에서는 새로운 것을 생산하고 그것을 소비하지 않으면 '항구적인 일상적 진부함 상태'를 만들어 버린다. 그런한 세계는 사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자본주의에서는 오직 새로운 것을 사는 것 만이 '일상적 진부함'을 벗어나는 일이자 가치가 있는 일이기 때문에 '돈'을 가진자가 가치있는 자가 된다.

따라서 벤이 자본주의가 낳은 유산으로 상징 될 수 있다면 해미는 '자본주의의 유산'에게 희생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벤은 낡은 비닐 하우스. 즉 가난, 약함, 낮음을 태워 없에는 것이 가슴을 뛰게 만든다고 한다. 낡은 것을 없에는 것은 새로운 것만 있는 세계를 더욱 빛나게 해줄테니까.(용산사태1 용산사태2) 그것이 자본주의의 동력이다.
무엇이 낡고 쓸모 없는 것인가?
하지만 종수에게 낡고 쓸모 없는 것은 포르쉐와 벤과 자신의 낡은 옷, 즉 기성세대의 오래된 유산인 아무것도 사유할 것이 없는 세계였다. 독재와 자본이 만든 세계. 종수는 결국 이 세계를 파괴하기 위해 소설이라는 은유와 상징속에서 벤(기성 세대의 유산)을 죽인다.

 

평가

사회적으로 의식적이고 형식적으로 예술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세계의 영화 역사학자들은 한국 영화의 이 시기를 되돌아보며 이창동 감독의 <버닝>과 같은 업적을 르네상스의 하이라이트로 생각할 것이다. (...) 영화의 재료는 문학이지만, 각색은 강력한 영화 언어로 이끌어진다. 이 영화는 매혹적인 이미지를 통해 내적 갈망의 감정을 잡아내는 동시에 어떻게 독특한 영화적 비전을 드러낼 수 있는지 알려주는 완벽한 예이다.
더 플레이리스트 2010년대 최고의 영화 100 中
<버닝>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벗어던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영화다. 작가의 시선에서 현 세대와 시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몸짓이라고 해도 좋겠다. (…) 무엇보다 작가라는 미명하에 스스로 온실 속에 격리되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시대와 조응하려는 과정에서 빚어진 마찰음이 소중하다. 영화에 대한 가혹하고 모욕적인 반응들까지 포함하여 <버닝>은 2018년 한국영화의 하나의 지표로서 기록될 만하다. 동시에 우리는 아직 이 영화에 대해 충분히, 그리고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 평자들의 고백[54]처럼 당분간 <버닝>을 계속 되돌아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씨네21 2018년 올해의 영화 中

2018년 5월 14일 국내 언론배급 시사회와 VIP 시사회를 진행했으나 칸 영화제에서의 프리미어로 인해 개봉일 오전 6시까지 엠바고가 걸려 있었다. 칸 영화제 측의 요구로 참석자들에게 서약서를 받을 정도였다고.

칸 영화제에서는 압도적인 호평을 받았다. 영국의 영화 잡지 스크린데일리에서는 4점 만점에서 역대 최고 점수인 3.8점을 매겼고,[55] 인터네셔널 시네필 소사이어티에서는 이번 칸 영화제에 출품된 모든 영화 중 가장 높은 점수인 5점 만점에 4.83점을 매겼다.# 칸 각종 매체 평점을 보면 압도적이다 싶을 정도로 <버닝>의 평점이 높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평점에 황금종려상까지 기대해볼만한 상황이었지만[56] 아쉽게도 본상에서는 무관으로 끝났다. 대신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수상했다. 칸 영화제 수상은 평점보다 당해 심사위원들의 취향으로 갈리기 때문. 본상은 무관이었지만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해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여기에 신점희 미술감독이 벌칸상을 수상했으므로 의미있는 결과.

국내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대체로 호평이지만 해외 평가만큼 압도적이진 않다. 씨네21의 경우 별 3개부터 별 5개까지 유독 편차가 큰 편이고 공격적인 평도 가끔 보인다.[57] 대체적으로 평론가들은 버닝이 모든 장면에서 미장센 문법을 철저히 구현했다는 등 영화적 기능에 맞춰 논하거나, 인물의 행적과 배경을 통한 사회적 메시지를 파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 평론가들의 취향이 들어가고 버닝 자체가 여백을 많이 만들어 놓은 영화라 저마다 평과 해석들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관객들의 평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영화를 보기 전, 주의해야 할 점은 친절하고 대중적인 영화가 아니란 점이다. 영화에 대해 감독과 배우들이 '청춘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미스터리에 관한 영화다', '다양한 여지를 주어 질문을 던진다', '관객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말을 거는 영화' 라고 설명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듯 쉽고 편한 영화는 아니다. 그래서 일반 관객 평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대충은 알겠는데 애매모호하여 명확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이에 대해 이창동 감독은 영화가 호불호가 나뉠 줄 예상했다고.

애매모호한 설정과 전개는 작중 종수의 답답한 감정과 종수가 보는 미스터리한 세상을 드러내기 위함이고, 종반부에서 종수의 정체성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의도된 선택이다. 영화 자체가 메타포의 향연이며 대사와 장면 하나하나가 상징과 은유로 이루어져있다. 티에리 프리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버닝을 "순수한 미장센으로서 영화의 역할을 다하며 관객의 지적 능력을 기대하는 시적이고 미스터리한 영화"라고 언급한 것처럼,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면서 자꾸 질문을 던진다. 그렇기 때문에 어렵고 지루하다는 반응도 있고, 영화 한 편에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겨둔다는 점에서 호평하는 관객들도 있다. 이를 보면 버닝은 취향을 타는 영화이다.

해외에서는 호평 일색이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메타크리틱은 90점(2018년 개봉영화 중 11위), 로튼토마토의 신선도 지수 95%이며, 일반 관객들이 많은 레터박스에서도 평이 좋아 연말 이용자들의 투표로 뽑는 어워드에서 최우수외국영화로 뽑혔다. 프랑스의 알로씨네에서는 평균 4.3점으로 13개 매체로부터 만점을 받았다. 로저 에버트 사이트, LA 타임스, 벨기에의 크낙포커스, 영국의 텔레그레프와 더 가디언[58] 등 여러 전문매체에서도 만점을 줬다. 전문가들 평에 비해 관객들의 관람평은 국내처럼 호불호가 갈리지만, 칸에서의 크리틱스 페이버릿(critics' favorite)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작품인지라 세계적으로 상찬을 얻은 아시아의 예술 영화로 접근하는 관객들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얻었다. 계급 간 격차 혹은 투쟁을 우화한 사회심리적 스릴러라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비범한 작품을 시각적 효과를 통해 영화적 체험을 끌어냈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았다. 또한, 이창동이라는 거장 감독의 새로운 시도, 3명의 젊은 배우들의 호연도 영화의 호평을 끌어내는 요소이다.

 

평론가 평

메타포의 그물로 건져 올린 상실의 시대
송경원 (★★★★☆)
해석과 리뷰 - 무비썸
다시금 새로운 영역으로 성큼 나아간 이창동. 지금이곳 청춘들의 고투와 분노를 다룬다는 점에서 한국적이고, 예술과 인식의 토대를 되묻는다는 점에서 근원적이다.
이동진 (★★★★☆)
프렌치 클래식처럼 느리되 맹렬한
박평식 (★★★☆)
서서히, 그러나 강력하게 불타오르며 지금 한국 청춘의 재를 장르 속에 버무린다. 가히 ‘시네마틱’한 체험.
김도훈 (★★★★☆)
아주 천천히 내게 거짓말을 해봐
이용철 (★★★)
헛'것'을 태우다
허남웅 (★★★)
이창동이 바라보는 요즘 20대들의 삶의 '상황'(circumstance)
김성훈 (★★★★★)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구하는 건 관객 자신
송형국 (★★★★)
하루키적인 것과 이창동스러운 것의 미스매치
이주현 (★★★)
문학 소년이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청춘' 같다
임수연 (★★★☆)
현혹되지 말 것
장영엽 (★★★☆)
돈, 섹스, 혐오 그리고 불신의 유예
김현수 (★★★★☆)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
정시우 (★★★★)
절망적 공감
김형석 (★★★★☆)
시대를 덮은 불안과 허무
심규한 (★★★★)
불분명한 감정을 쌓아 올려 자신만의 정점을 찍지만 다소 현학적으로 보인다
박꽃 (★★★)
침묵 끝에 선택한 그의 버닝이 시리고 뜨겁다
박은영 (★★★☆)
'헝거'와 '개츠비'의 잔혹 우화.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모티브로 윌리엄 포크너의 분노를 이야기하는 영화. 미스터리를 어떻게 영화적으로 구현할 것인가를 시험한 이창동 감독의 정교한 시도가 눈에 띄는데, 비닐하우스, 고양이, 빛, 우물, 마임, 등장인물 등의 상징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질문한다. 따라서 영화에서 본 모든 것이 사실인지, 일부만 사실인지, 아니면 모든 것이 (종수의 소설 속) 허구인지, 그 어떤 해석도 가능한 미스터리는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서정환 (★★★★)
<버닝>은 이러한 모호한 삼각관계 속에서 시대와 계급 사회를 향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담아내는 동시에 세 인물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 관계를 유연하게 끌고 나간다. 이야기의 특수성만큼 캐릭터에 대한 깊이 있는 설정과 시선도 눈길을 모은다. (...중략...) 세 캐릭터 모두 복합적인 관계를 지양하고 있다는 점에서 <버닝>이 이들을 통해 전하고자 한 인간의 복합적인 철학은 감독이 남긴 상징적인 묘사와 여백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게 한다. 이는 미완성 혹은 모호함으로 끝맺은 결말 부분에 대한 해석에도 적용된다. 작가주의적 시선과 스릴러적 구성을 적절하게 배합했다는 점에서 볼 때 <버닝>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1966년 작품 <욕망 (Blow-Up)>을 떠올리게 한다. '공원에서 촬영된 사진'이 촉발시킨 사건을 메인 소재로 삼아 긴장감을 높이지만, 정작 영화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와 시선은 이와 거리가 먼 다른 것이 <욕망>의 주 설정이다. <버닝> 또한 이 같은 설정을 기반으로 관객의 시선을 시종일관 끌고 가게 하는 묘한 매력을 전해줘 스릴러의 관점에서 영화를 관람한다면 의외의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최재환 (★★★★☆)
無의 몸짓
김영진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다
안시환
The cumulative effect of all its perfect moments, all its perfectly true, unexpected and consequential scenes, is scorching. (...) Every new development seeds the one that comes after and changes your perspective on what went before, right up to a climax those oscillating reversals take place across a single shocking moment, sending you out into the night with a gift: a story that is fully spent and wholly satisfying but eternally, burningly mysterious.
Jessica Kiang <사이트 앤 사운드>
Burning is a thriller like no other you'll see this year. Repeat viewings of this smouldering tale of glorious complexity will surely yield ample rewards.
Pierce Conran <스크린 아나키>
Burning continues this thematic investigation with extraordinary lucidity and intelligence, but also an abiding respect for its own mysteries. This is the most absorbing movie I've seen this year, as well as the most layered and enigmatic.
Justin Chang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NPR>
Desire, ravenous and ineffable, shudders through Burning. (...) The story has the quality of a mystery thriller. (...) The larger, more agonizing question here, though, involves what it means to live in a divided, profoundly isolating world that relentlessly drives a wedge between the self and others.
Manohla Dargis <뉴욕 타임스>
Burning surely ranks with the year’s very best. (...) Burning, is enigmatic, but captivating enough that it compels rather than repel the viewer.
Jordan Ruimy <더 플레이리스트>
This is a beautifully crafted film loaded with glancing insights and observations into an understated triangular relationship, one rife with subtle perceptions about class privilege, reverberating family legacies, creative confidence, self-invention, sexual jealousy, justice and revenge.
Todd McCarthy <할리우드 리포터>
피부 깊숙하게 전율이 스며들도록 절정의 장면들을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어낸다. 영화에는 잠재된 계급 갈등,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분노와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소외와 고립, 성적 갈망 등에 관한 연구가 담겼다. 이런 복합적 주제들은 서로 긴밀하고 훌륭하게 어우러진다.
<텔레그래프>
버닝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뭔가 옳지 않다는 느낌을 반영한다. 버닝은 신비한 차원을 만든다. 영화는 당신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 한동안 머물러있는다.(Burning reflecteert op de wereld waarin we leven, op het gevoel dat er iets niet in orde is. Burning krijgt mystieke dimensies. Een film die je niet licht vergeet, die onder je huid kruipt, en daar blijft branden.)
<트로우(Trouw)>
버닝은 필연적인 피날레가 끝난 후 오랫동안 머물러있는 훌륭한 미스터리다.(Burning is een briljant geacteerd mysterie dat lang blijft nasmeulen na zijn onafwendbare finale.)
<NRC>
가장 놀라운 스릴러. 세 명의 주인공은 훌륭하다. 단 하나의 감정도 놓치지 말라. 이창동이 만든 걸작.(De meest merkwaardige thriller in tijden. De drie hoofdrolspelers zijn voortreffelijk: nooit vast te pinnen op een enkele emotie. Virtuoze filmkunst van Lee Chang-dong.)
<폴크스트란트(De Volkskrant)>
미스터리와 시를 연결하는 불가항력적 심리 스릴러. 영화는 관객에게 걸작을 본 듯한 느낌이 들게 하고 종래에는 불타는 감정의 여운을 준다.
<더 모르헌(De Morgen)>
이창동이 만든 이 시적인 스릴러는 신비스럽고 매혹적이며 격렬하다.(Un thriller poetique que la mise en scene de Lee Chang-Dong rend mysterieux, puis fascinant, puis feroce.)
<텔레라마(Telerama)>
환상의 힘에 관한 아름다운 영화(Un tres beau film sur la force de l’illusion.)
<르 피가로(Le Figaro)>
훌륭하다. 탁월하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매혹적이다.(Magistral. Sublime. D’une incroyable intensite, magnetique.)
<리베라시옹(Liberation)>
완벽한 화면, 긴 시야, 분위기 있는 조명, 믿음직스러운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눈을 뗄 수 없다
<무비스 룸>

 

유명인 평

촬영감독 아녜스 고다르는 최근 10년간 가장 좋아하는 10편의 영화 중 2위로 버닝을 꼽았다
영화 감독 아리 애스터가 버닝을 극찬했고, 올해의 영화로도 꼽았다.
이창동의 팬이라고 밝혀온 션 베이커 감독[59]은 어김 없이 레터박스에 감상평을 남겼다.
영화 감독 에드가 라이트는 영화 욕망을 언급하면서 버닝의 감상평을 남겼다.
영화 배우 브리 라슨도 버닝을 최고의 영화라고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가장 좋아하는 영화 15편 중 하나로 꼽았다.

 

대한민국

같은 주에 개봉하는 작품은 데드풀 2, 안녕, 나의 소녀, 임을 위한 행진곡, 피터 래빗(이상 2018년 5월 16일), 5.18 힌츠페터 스토리, 다이노 헌터: 티렉스 VS 파키리노 대격돌, 마중: 커피숍 난동 수다 사건, 마징가 Z: 인피니티, 청년 마르크스, 트립 투 스페인, 파리 오페라(이상 2018년 5월 17일)까지 본작 포함 12편이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기세가 꺾이는 4주차라서 본격적으로 개봉작이 많다.

순제작비 기준 손익분기점은 170만명[61], P&A 비용 포함 250만명으로 알려져있는데, 누적관객수로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해외 판매를 통해 당초 알려진 손익분기보다 낮아진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 작가주의 영화라는 인식이 강하고 무겁고 어려워 상업적으로 성공하기엔 대중성이 부족한 영화였다.

 

국외 개봉정보 

2018년 5월 기준 100개 국에 판매되었다. 흥행을 기대하기보다 예술성이 강한 영화로 알려져 있어 각 국에서 소규모로 개봉됐다. 유력 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후 여러 곳을 도는 다른 영화들처럼, 각 국 영화제에서 프리미어된 후 정식 개봉 루트를 탄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8년 12월 기준 칸, 시드니, 뮌헨, 카를로비바리, 토론토, 뉴욕, 시체스, 빈, 마르델플라타, 스톡홀름 등 80개 이상의 영화제에 초청됐다.
아시아
대만에서는 타이베이 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된 후 6월 29일에 개봉했다. 대만판 제목은 연소열애(燃燒烈愛). 홍콩에서는 홍콩아시아영화제에서 초연하고 12월 27일 개봉했으며, III등급을 받았다. 중국에서 판권은 팔렸으나 개봉은 요원하다. 그런데 더우반의 2018년 결산에서는 가장 주목받는 미개봉작 6위, 가장 주목받는 감독 8위(이창동), 평점이 가장 높은 한국 영화 4위, 가장 주목받는 외국 남자 배우 10위(유아인) 리스트에 올라온 것을 볼 수 있다.#
7월 5일에 개봉한 싱가폴에서 M18 등급을 받았다. 7월 19일에 개봉한 태국의 등급은 18세, 8월 2일에 개봉한 말레이시아의 등급은 P13이다.
서아시아 국가인 이스라엘에서는 하이파 영화제에서 초연하고 10월 18일에 개봉했는데, 여기 등급은 14세이다.
일본에서는 12월 29일에 NHK의 특집 드라마 95분 편성으로 TV에서 먼저 선보였다. 종수 역에는 에모토 토키오, 벤 역에 하기와라 마사토, 해미 역에 타카나시 린이 더빙을 맡았다. 그리고 2019년 2월 1일에 극장 개봉했다. 영화 등급은 PG12다.
유럽
러시아에서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제 및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프리미어로 선보인 후 7월 5일 개봉했다. 러시아에서 개봉하는 외국 영화답게 더빙되었다. 더빙된 예고편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등 다른 CIS 국가들도 같은 달에 개봉했다.
프랑스에서 8월 29일 개봉했다. 인접국인 룩셈부르크, 벨기에, 스위스(프랑스어권)에서도 같은 날 개봉했다. 이쪽 나라의 메인 예고편은 편집이 다른데 오리지널보다 스포가 많다. 프랑스에서의 등급은 전체관람가(Tous publics). 알로씨네(allocine)에 집계된 30개 매체의 평균 평점은 4.3/5점으로 13개 매체가 만점을 줬고 리베라시옹, 르 피가로, 르몽드 등에서 버닝을 특집 기사로 다뤘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는 이창동 회고전이 열려 이창동이 파리에 방문했다. 개봉 첫 주의 흥행도 준수한 편으로 2009년 이후 프랑스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 중 3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기사
베네룩스 중 나머지 국가인 네덜란드에서는 WCA, 필름 바이 더씨 등에서 먼저 선보인 후 10월 11일에 개봉했다. 등급은 16세.
유럽 국가들의 연령 등급은 대체적으로 한국보다 완화되었다. 9월 20일 개봉한 크로아티아 12세, 10월 19일에 개봉한 스페인(시체스 영화제 초연)도 12세, 11월 8일에 개봉한 헝가리(미슈콜츠 영화제 초연)는 16세, 2019년 5월 16일에 개봉한 포르투갈은 M14.
영국에서는 런던 영화제에서 프리미어를 했고 케임브리지, 리즈 등 여러 영화제에서 공개한 후 2019년 2월 1일에 개봉한다. 등급은 15세. 아일랜드도 같은 날 개봉했다.
독일에서는 뮌헨 영화제에서 초연하고 각종 영화제에 상영됐는데, Around the World in 14 Films라는 행사에서는 독일의 배우 라스 루돌프가 버닝을 소개하기도 했다. 개봉은 2019년 6월 6일 16세의 등급으로 했다. 빈 영화제서 초연한 오스트리아는 다음날 개봉했으며, 독일어권 스위스 개봉일은 이보다 앞선 1월 10월이었다.
폴란드에선 크고 영화제에서 소개되다가 12월 28일에 개봉했다. 터키도 비슷했다가 2019년 1월 11일에 15+으로 개봉했고, 아테네 영화제에서 초연한 그리스는 1월 10일, 루마니아에서는 같은 해 4월 15일 N15등급으로 개봉했다.
북유럽 국가들도 2019년 초 비슷한 시기에 연이어 공개됐다. 스웨덴(스톡홀름 영화제 초연) 15세 1월 18일, 노르웨이(베르겐 영화제 초연) 15세 2월 22일, 핀란드 16세 2월 22일. 다만 덴마크는 2018년 12월 20일에 15세로 바로 개봉했다.
이탈리아는 2019년 9월 19일에 개봉했다. 특이하게 "L'Amore Brucia"라는 부제를 달고 나왔으며 예고편도 장엄한 분위기의 음악을 깔았다. 프랑스처럼 영화 심의에 자유로운 나라라 등급은 T(전체관람가)이다.
아메리카
북미에서는 토론토 영화제에서 프리미어를 했고 개봉 전 뉴욕, 몬트리올, 벤쿠버 등 크고 작은 여러 영화제들에서 상영됐다. 10월 26일 뉴욕, 11월 2일 LA에서 선보인 후 11월 9일 제한상영으로 시작했다.
브라질에서는 상파울루 및 리우 영화제에서 프리미어하고 11월 15일에 개봉했다. 등급은 16세.
멕시코에서는 15세로 3월 15일에 개봉했고, 카트라헤나 영화제에서 초연한 콜롬비아도 비슷한 3월 21일에 개봉했는데 등급은 12세이다.
기타
시드니 영화제에서 초연한 호주에서는 M등급으로 이듬해인 2019년 4월 18일에 개봉했다. 뉴질랜드도 마찬가지.

 

수상 및 후보

칸에서 초연 이후 각국에 상영되면서 비평적으로 좋은 성과를 얻었다. 대중친화적이지 않아 프랑스 외에는 흥행 스코어가 높지 않지만, 영화제와 아트하우스를 통해 시네필들의 많은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프랑스비평가협회와 벨기에영화기자협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바 있고, 덴마크의 보딜상이나 로베르트상, 일본의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의 후보에도 올랐다. 연말 결산에서는 카예 뒤 시네마, 사이트 앤 사운드, 더 가디언 등의 유럽 매체들뿐만 아니라 인디와이어, 할리우드 리포터 등 북미의 다수 매체들이 올해의 영화와 2010년대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 버닝을 올렸다. 또한 북미권 다수의 비평가협회상,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 새턴상 등에 후보 지명 혹은 수상의 결과를 얻었다. 특히 스티븐 연의 남우조연상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가 비영어 영화로 받은 상이기에 값진 성과라 할 만하다. 유아인 역시 뉴욕 타임스 올해의 배우로 선정되어 주목을 받았는데, 북미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고 해외 프로모션에 나서지 않았음에도 유일한 아시아 배우로 꼽힌 것이라 버닝이 그만큼 북미에서 의미있는 결과를 얻었다 볼 수 있다.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된 후 해외의 다수 매체들이 버닝을 외국어 영화상의 프론트 러너로 꼽았었다. 2018년 12월 17일에는 오스카 외국어영화상의 1차 후보(shortlist)에 올랐다. 1차 후보에 오른 것 자체가 한국영화 최초이다. 버닝은 북미권 비평가협회상 수상, 세계 유수의 비평가들로부터 올해의 영화 상위권으로 선정되며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지만, 2019년 1월 22일에 발표된 최종 후보에는 들지 못했다. 유달리 외국어영화상 부문이 강력하기도 했고, 캠페인에 있어서 버닝의 미국 현지 배급사[63]가 워낙에 약하기도 했다. 도박사나 전문가들로부터 최종 후보에 들 것으로 예상되었던지라, 후보 발표 후 여러 매체에서 버닝의 노미네이트 불발을 '오스카의 snub(무시)' 리스트에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의 글처럼 한국 영화인 버닝이 세계적으로 상찬을 얻었다는 데 의의가 있으므로 오스카 최종 후보 불발이 기록으로서는 아쉬울 수 있으나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를 바뀌게 하는 것은 아니다

 

상세 내역

제71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 국제비평가연맹(FIPRESCI)상
제25회 아다나 국제영화제 국제경쟁부문 최우수작품상
제55회 대종상 최우수작품상
제3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FIPRESCI 한국본부상, 올해의영화 11선
제3회 프렌치시네마투어 에뚜왈 뒤 시네마 상
제28회 필름 프롬 더 사우스 페스티벌 실버미러 상
제7회 키웨스트 영화제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제90회 전미 비평가위원회 Top5 외국어영화
제12회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즈 심사위원대상
제22회 토론토 영화비평가협회상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최우수작품상 2위
제44회 로스앤젤레스 영화비평가협회상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최우수작품상 2위
제3회 뉴멕시코 영화비평가협회상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최우수작품상 2위
제1회 런던영화주간 최우수작품상
제18회 디렉터스컷시상식 올해의 특별언급
제76회 유타 영화비평가협회상 비영어작품상 2위
제25회 댈러스-포트워스 영화비평가협회상 최우수외국영화상 4위
제14회 노스텍사스 영화비평가협회상 최우수외국영화상 3위
제1회 그레이터웨스턴뉴욕 영화비평가협회상 최우수외국영화상
제17회 콜럼버스 영화비평가협회상[64] 최우수외국어영화상 2위
제53회 전미 비평가협회 최우수작품상 3위, 최우수외국어영화상 3위
제14회 오스틴 영화비평가협회상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제4회 프랑스비평가협회 Club Média Ciné 시상식 외국어영화부문 그랑프리
제16회 아메리칸 필름 어워즈 최고의 드라마 영화
제38회 벨기에 영화 프레스 연합 시상식 대상(그랑프리)
제16회 인터내셔널 시네필 소사이어티 어워즈 최우수작품상 2위, 최우수비영어작품상 2위
제17회 피렌체 한국 영화제 오리종티 코리아니
제7회 MOOV 영화제 Sembène 상
제45회 새턴상 최우수국제영화상
제5회 시네리브리 국제도서영화제 최우수문학각색작품상

 

주요 리스트 선정및 비공식 수상

연말 결산
인터내셔널 시네필 소사이어티 2018 칸 어워즈 황금종려상
제42회 상파울루 국제영화제 2018 Mostreiros어워즈 최우수작품(Leon de Ouro)
카예 뒤 시네마 2018년 올해의 영화 Top10 중 4위
인디와이어 2018년 올해의 영화 Top10 중 7위
버라이어티 선임 비평가 Peter Debruge의 2018년 올해의 영화 Top10 중 9위
뉴욕 타임스 2018년 올해의 영화 Top10 중 2위, 올해의 배우 12명 중 1명(유아인)
토론토 영화제 프로그래머 James Quandt의 2018년 올해의 영화 Top10
롤링 스톤 2018년 올해의 영화 Top20 중 12위
더 플레이리스트 2018년 올해의 영화 Top25 중 5위, 올해의 연기 Top40 중 8위(유아인)
로저 에버트 Christy Lemire의 2018년 올해의 영화 Top10 중 3위
영국 영화 연구소(BFI) 사이트&사운드[65] 2018년 올해의 영화 3위
The A.V. Club 2018년 올해의 영화 1위
Ringer 2018년 올해의 영화 Top10 중 1위
Dazed 2018년 올해의 영화 Top12 중 9위
La Septiemeobession 2018년 올해의 영화 Top10 중 5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2018년 올해의 영화 Top18
LA타임즈 2018년 올해의 영화 1위
링컨센터 영화협회 필름 코멘트[66] 2018년 올해의 영화 Top20 중 2위
인디와이어 2018년 크리틱스 폴[67] 최고의 영화 3위, 감독(이창동) 2위, 남자조연(스티븐 연) 1위, 각본 5위, 외국어영화 2위
에스콰이어 2018년 최고의 영화연기 Top13 중 1명(유아인)
슬랜트 매거진 2018년 올해의 영화 2위
씨네21 올해의 한국영화 1위, 올해의 감독(이창동), 올해의 촬영(홍경표)
할리우드 리포터 올해의 외국어영화 2위, International Breakout Talents Top15 중 1명(전종서)
제29회 Prix des auditeurs du Masque et la Plume 외국어영화부문 관객상 5위
AP 평론가 Jake Coyle의 2018년 최고의 영화 1위
하스미 시게히코가 선정한 2018년 올해의 영화 Top10 중 8위
쿨툴라 2019 작가가 선정한 영화
제17회 인터내셔널 온라인 시네마 어워즈 외국어영화상
더 가디언 2019 최고의 영화 Top10 중 8위
디프레세 2019년의 영화 Top17
이탈리아 시네포럼 2019 최고의 영화 Top10[68]
독일 Filmstarts 2019 최고의 영화 Top10 중 1위
The Wee Review 2019년의 영화 중 10위
데일리 텔레그래프 2019년 최고의 영화 Top23 중 7위
인디펜던트 2019년 최고의 영화 Top20 중 11위
키네마 준보 2019년 외국영화 베스트 10위

2010년대 결산
인디와이어 최근 10년간 최고의 영화 100 중 22위
더 가디언 21세기 최고의 영화 100 중 85위
컨시퀀스 오브 사운드 2010년대 영화 Top100 중 80위
The Young Folks 2010년대 최고의 영화 50 중 13위
더 플레이리스트 2010년대 최고의 영화 Top100 중 1위, 10년간 최고의 연기 중 1명(스티븐 연)
버즈피드 2010년대 가장 상징적인 TV와 영화 캐릭터 중 1명(이종수)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 2010년대 비영어 영화 Top25 중 2위, 10년간 가장 섬세한 연기 Top10 중 1명(유아인)
토론토 영화제 시네마테크 최근 10년간 최고의 영화 중 공동 10위
The A.V. Club 2010년대 최고의 영화 Top100 중 32위
롤링 스톤 2010년대 최고의 영화 Top50 중 12위
링컨센터 영화협회 필름 코멘트[69] 2010년대 최고의 영화 Top50 중 18위
슬랜트 매거진 2010년대 최고의 영화 100 중 37위
인터내셔널 시네필 소사이어티 지난 10년간 최고의 영화 100 중 27위

 

이야깃거리

이창동 감독이 필름이 아닌 디지털로 찍은 첫 영화다. 스펙은 4K 시네마스코프.
4월 24일 제작보고회에서 배우들이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해 유아인은 "속을 알 수 없는 인물" 스티븐 연은 "mysterious" 전종서는 "미스터리하다"고 답한데다가 이창동 감독도 "미스터리한 영화"라고 말해 영화의 내용 유출에 대해 극히 조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다른 방식으로 관객에게 말을 거는 작품"이라고 말하면서 영화가 세상에 대한 미스터리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창동 감독은 촬영 전 배우와 스탭들에게 "우리 미지의 세계에 빠져보자"고 말했다고 한다. 5월 4일 기자회견에서는 "일상 속에서 이 세상의 미스터리를 마주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2018년 5월 5일에 별세한 프랑스의 영화 프로듀서 피에르 르시앙이 생전 버닝에 대해 쓴 글이 며칠 뒤 공개됐다.인디와이어 르시앙은 칸 영화제 자문위원이자 여러 한국영화를 유럽에 알린 사람으로, 이창동 감독은 칸 영화제가 끝나고 르시앙의 추도식에 참석한 뒤 귀국했다.
CGV 공식계정이 업로드한 월드 프리미어 당시 스케치 영상
이창동 감독이 칸 영화제 비하인드 얘기를 하면서, 현지에서 워낙 호평이라 오히려 불길한 예감을 가졌었다고. 작품 자체가 무난하지 않고 개성이 워낙 강한데다 아무리 경쟁부문 상영작이라도 호불호가 갈리기 마련인데, 상영 후 유난히 모두 '버닝이 꼭 황금종려상을 받아야 한다'란 말들을 해서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의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역시나 불길한 예감을 틀리지 않았다며 반농담 식으로 말했다. 이창동은 영화제 심사위원을 역임할만큼 그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상한 듯.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 함께 거론되기도 한다. 실재과 허구가 뒤섞이며 등장 인물이건 관객이건 명확하지 않은 사실 관계 속에서 각자의 해석과 답을 찾게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두 영화 모두 홍경표 촬영감독이 촬영했다. 이런 이유때문인지 2018년 12월에 디렉터스컷 어워즈 관련으로 나홍진이 모더레이터를 맡아 이창동에게 질문하는 행사가 만들어졌다.
극중에서 벤이 종수를 초대한 카페는 진짜로 서래마을에 있지만, 종수가 벤을 미행한 뒤 들어간 카페는 부산에 있다. 서울에 폭설이 내려서 부산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마지막 장면은 실제로도 마지막 날에 촬영했으며, 촬영에 들어가자 진짜로 눈이 왔다고 한다.
영화 자체와는 별개로 개봉 전인 2017년 11월 유아인이 래디컬 페미니즘 진영에게 사이버 불링을 당했을 때 네이버 영화, 다음 영화, 왓챠 등지에서 트페미와 여성시대 유저 등 메갈리안들이 영화의 별점 테러를 감행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이에 맞서서 10점을 주는 네티즌들도 대거 등장한 적이 있었다. 사이버 불링의 주체들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버닝을 홍보한 정유미의 인스타그램과 송혜교의 인스타그램.도 테러를 했다.
2018년 5월 개봉을 앞두고 스티븐 연의 욱일기 논란이 일어나 영화의 별점 또한 영향을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스티븐 연 문서 참조. 전종서는 칸 참석을 위해 출국했을 때 카메라 앞에서 웃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화 자체에 자극적인 화제를 끌고 오기 좋아하는 기자들에게 타겟이 되었다. 이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두 배우는 칸 현지에서 한국 언론을 상대로 하는 일정은 참여하지 않기로 공지했지만, 이 또한 기자들에게 트집이 잡혀 참여하기로 변경했다. 전종서의 경우 귀국 이후에도 개인 인터뷰를 진행했고 관객과의 대화 등 모든 일정에 참석했다.
해외에서는 영화를 'slow-burn thriller'로 표현하거나 삼각관계로 소개하는 경우도 있다.
몇몇 국가에서 성냥갑이 굿즈로 되는 듯하다.# #
씨네21에서 진행한 이창동 감독의 인터뷰.[70]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하지만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 <Barn Burning>의 영향도 받았기 때문에[71] 그 의미를 살리고 싶어 '버닝'이란 제목을 가져왔다고 한다. 또한 뭔가를 불태우고 싶고 열중하고 싶을 때 쓰는 말이지만, 영화에서는 버닝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역설적인 의미도 있어 제목으로 썼다고 한다.
<베테랑>에서 사이코패스 부자 역을 열연했던 유아인은 여기서 되려 사이코패스(?)[72] 부자에게 역으로 농락을 당한다. 또한 <베테랑>에서 유아인은 살집이 도톰한 캐릭터에 맞게 몸을 찌웠으나, 이 영화에서는 현저하게 마른 몸을 보여주어 두 영화 상의 차이가 극명하다.
NHK와 하루키 간의 판권 문제로 인해 제작이 연기되지 않았다면, 1년 앞선 2017년 5월 즈음에 개봉됐을 것이다. 다만 이 당시의 캐스팅은 유아인과 강동원이였다. 한편, 일부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원빈이 캐스팅된 적이 있다는 글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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